대한민국의 국가유공자
송해
宋海 | Song Hae
송해 얼굴
본명
송해 (宋海)
출생
1927년 4월 27일
황해도 재령 군 재령면
(現 황해남도 재령 군 재령읍)
사망
2022년 6월 8일 (향년 95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삼성아파트
본관
은진 송 씨 (恩津 宋氏)
국적
대한민국 국기
대한민국
장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 546
송해 TV 출연
DBS 동아라디오 《스무고개》
TBC 동양라디오《가로수를 누비며》(1975년 11월 ~일자 미상)
TBC 동양방송 《쇼쇼쇼》(1975년 12월 27일)
KBS TV 《고전유머극장》(1977년 2월 20일)
KBS2 《코미디출동》
KBS2 《코미디 하이웨이》
MBC 라디오 《코미디쇼》
KBS2 《명랑 소극장》
KBS TV 《노래잔치》 안개 낀 고속도로
KBS1 《100분 쇼》(1981년 8월 18일 코미디 민속특집 견우와 직녀)
KBS2 《유모어극장》(1982년 9월 19일 40에 태어나다)
KBS1 《방송의 현장》(1987년 5월 24일) 게스트
KBS1 《전국노래자랑》 MC (1988년 5월 8일 ~ 1994년 4월 30일, 1994년 10월 16일 ~ 2022년 5월 15일), 유작
KBS2 《가족오락관》 게스트
KBS1 《TV는 사랑을 싣고》(1996년 9월 27일 117회) 게스트
KBS2 《엄앵란, 이택림의 사랑방》(1997년 3월 24일 MC송해, 가슴속에 묻어둔 이야기 169회) 게스트
KBS2 《가족오락관》 게스트
KBS1 《아침마당》 목요초대석 (2001년 5월 3일 코미디는 나의 인생) 게스트
KBS1 《아침마당》 목요초대석 (2001년 11월 29일 송해와 김인협 악단장의 전국노래자랑 25년의 이야기) 게스트
KBS1 《아침마당》 목요초대석 (2003년 8월 14일 50년 실향의 한을 풀었다오! 국민 MC 송해) 게스트
KBS1 《피플 세상 속으로》(2002년 11월 28일 딩동댕 14년, 국민 MC 송해의 전국노래자랑 출장기)
KBS KOREA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2003년 9월 8일) 게스트
KBS2 《이홍렬, 박주미의 여유만만》(2005년 2월 10일 인생 79년, 방송 50년) 게스트
KBS2 《감성매거진 행복한 오후》(2006년 10월 9일 최고령 MC 송해의 이야기) 게스트
KBS2 《추석특집 전국 이장·통장 축제한마당》 MC (2007년 9월 25일)
KBS1 《아침마당》 인생수첩 (2008년 2월 18일 별이 된 영원한 오빠, 송해 환한 얼굴 뒤 숨겨진 슬픔, 송해의 고백) 게스트
KBS1 《추석특집 전국 이장·통장 노래자랑》 MC (2008년 9월 15일)
KBS1 《아침마당》 화요초대석 (2010년 3월 2일 전국노래자랑 30년, 그 못다 한 이야기) 게스트
KBS2 《연예가 중계》 코너 게릴라 데이트 게스트(2010년 4월 3일)
KBS2 《김승우의 승승장구》 게스트(2010년 11월 16일)
KBS2 《설특집 딩동댕 스타노래자랑》 MC
MBC 《주택복권 추첨》
MBC 《웃으면 복이 와요》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게스트(2014년 9월 15일, 9월 22일)
KBS2 《나를 돌아봐》(2015년 ~ 2016년)
KBS2 《2TV 아침》(2015년 1월 27일 전설의 MC 송해, 인생을 말하다) 게스트
KBS2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2015년 3월 21일) 게스트
KBS2 추석특집 《아이돌 전국 노래자랑》 MC(2015년 9월 28일)
MBC 《세모방: 세상의 모든 방송》
KBS2 《대화의 희열》(2018년 11월 3일) 게스트
MBN 《송해야 고향 가자》(2019년 9월 11일~12일)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2020년 1월 12일 게스트
KBS1 《아침마당》 화요초대석 (2020년 9월 1일, 2021년 11월 9일) 게스트
KBS2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2022년 1월 31일)
TV조선 《부캐전성시대》 플렉소
송해 특별출연 영화 출연
2020년 《송해 1927》
송해 예능
2011년 1월 4일 《드림하이 - 전국 노래자랑》 MC
2019년 12월 12일 MBN 《보이스퀸》
2021년 11월 24일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송해 영화 출연
1963년 《YMS 504의 수병》
1966년 《요절복통 007》
1968년 《남자 미용사》
1968년 《단벌 신사》
1968년 《어머니는 강하다》
1969년 《남편》
1969년 《내 팔자가 상팔자》
1969년 《신세 좀 지자고요》
1969년 《특등비서》
1970년 《할아버지는 멋쟁이》
1970년 《구혼 작전》
1970년 《운수대통 일보직전》
1986년 《방황하는 별들》
2002년 《울랄라 시스터즈》
2003년 《동해물과 백두산이》
2013년 《전국노래자랑》
송해 드라마 출연
2008년 5월 27일 《산너머 남촌에는 1》 - 전국노래자랑 충청남도 예산군 편 MC
2015년 《프로듀사》
2020년 《기막힌 유산》 - 전국노래자랑 MC 역(특별출연, 마지막 회)
송해 CF 출연
1970년 삼립식품(하이면)
1970년 한국존슨(에프킬라)
1985년 한스제약(까스파파)
1985년 ~ 1993년 동국제약(인사돌)
1986년 농심(새우깡)
1987년 모나리자
1992년 한화 L&C(둥둥 부자)
2000년 ~ 2011년 명인제약(이가탄)
2012년 IBK기업은행
2013년 SK텔레콤(LTE-A)
2013년 DTV코리아
2013년 대농바이오영농조합법인 만품산삼 가득 생막걸리
2015년 천년고수 상주곶감
2015년 2015 괴산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
2015년 나르지오
2016년 동양화학 이끌림 새시
2018년 우리 관광
2018년 편강한방연구소(구전녹용)
2019년 달성군청
2022년 야놀자
송해를 연기한 배우
예능
1996년 《TV는 사랑을 싣고 - 송해 편》... 유현철
TV 드라마
2015년 《인순이의 토크 드라마 그대가 꽃 - 송해 편》... 정준원, 금호석, 박칠용
2015년 《인순이의 토크 드라마 그대가 꽃 - 구봉서 편》... 장지웅
뮤지컬
2022년 《2022 설대기획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 … 정동원, 이찬원, 영탁, 신유
송해 수상
1987년 KBS 코미디 연기대상 특별상
1999년 제6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2001년 한국연예협회 제8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 문화훈장
2001년 KBS 가요대상 특별상
2002년 MBC 명예의 전당
2002년 KBS 연예대상 공로상
2003년 제15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진행자부문'
2003년 제30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특별공로상
2004년 KBS 바른 언어상
2008년 제44회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2009년 제2회 한민족문화예술대상 대중문화부문상
2009년 제1회 대한민국 희극인의 날 자랑스러운 스승님상
2010년 제1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남자 TV 진행상
2010년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특별상
2014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2015년 KBS 연예대상 베스트 커플상(with 조우종) 《나를 돌아봐》
2016년 제28회 한국 PD대상 출연자상 TV 진행자 부문
2022년 기네스북 등재 성공(최고령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 부분, 만 95세)
2022년 제49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특별상
2022년 KBS 연예대상 공로상
송해 생애 요약
송해(宋海, 1927년 4월 27일~2022년 6월 8일)는 대한민국의 가수, 희극 배우이자 방송인, 황해도 재령 군 출신의 실향민이다. 음악 경연 TV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34년간 맡아서 사회자(TV presenter)로 활동했다.
송해 사망
대한민국의 최고령 가수, 희극 배우로 1955년 창공 악극단으로 데뷔한 이래 2022년 96세로 고인이 될 때까지 현역으로 활동하였다. 2022년 6월 8일 오전 8시 30분경 서울 도곡동 같은 아파트 위층에 사는 딸에 의해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고, 긴급 출동한 소방대원에 의해 현장에서 사망이 확인된 이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오전 8시 45분, 병원에서 사망이 공식 확인되었다. 송해는 2022년 1월과 5월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으며, 3월은 코로나-19에 확진되기도 했다. 6월 10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종로구 낙원동 송해길, KBS를 거쳐 경북 김천시 소재의 화장장에서 화장된 후, 고인의 유해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 546(송해공원 인근)에 안장되었다.
송해 전국노래자랑 하차
2022년 초 건강상 이유로 '전국노래자랑' 하차를 고민하기도 했고, 제작진과 스튜디오 녹화로 방송에 계속 참여하는 방안 등을 논의해 왔으나 이후 야외 녹화로 프로그램 제작 일정이 정해지면서 임시 하차 후에 다시 진행한 방향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야외 녹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단독 MC였던 송해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정식 진행자가 정해질 때까지 작곡가 이호섭과 KBS 아나운서 임수민의 더블 MC 체제로 프로그램이 편성되었다.
송해 월남
1927년 4월 27일 황해도 재령 군 재령면에서 출생했으며, 본관은 은진 송 씨이다. 1949년 해주예술전문학교 성악과에 입학해 공연을 시작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1950년 6월 한국 전쟁이 발발했고, 이듬해 1.4 후퇴 당시 미군의 탈출선을 타고 월남했다. 송해는 당시 인민군의 징집을 피해 몇 차례씩 동네 산자락으로 올라가 피신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했는데, 3번째로 피신했을 때 상황이 악화되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남쪽으로 향하는 탈출선에 오르게 되었다. 송해의 모친은 집을 떠나는 송해에게 "얘야, 이번에는 조심하렴"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모친과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되고 말았으며, 송해는 2015년 발표한 노래 《유랑청춘》에서 이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가사를 실었다. 탈출선을 타고 내려오며 지금의 '송해'(宋海)라는 예명을 지었는데 월남 과정에서 타고 있던 선박 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넓은 바다와 같은 세상을 품겠다는 마음을 갖고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송해 대한민국 국군 입대
부산에 도착한 송해는 대한민국 국군에 입대하여 휴전 때까지 통신병으로 복무했으며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의 통신문을 모스 부호로 전송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대구 달성공원에서 통신병으로 복무할 당시 군대 선임 상사의 여동생 석옥이 여사를 처음 만났고, 이듬해에 결혼하였다.
송해 창공악극단 가수
제대한 직후인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정식 데뷔했으며, 1963년 영화 《YMS 504의 수병》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1960년대 후반부터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방송 MC로 전환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인기를 얻었다. 구봉서, 배삼룡, 이주일, 남성남 등과 함께 1970~1980년대 각종 코미디 프로그램과 방송 MC로 활동하였으며 1970년대까지는 TBC에서 활동하다가 1980년 언론통폐합 조치로 TBC가 강제 폐국된 이후엔 KBS 2 TV로 넘어와 활동하였다.
송해 외아들 송창진 교통사고 사망
송해는 동양방송 - KBS 제2라디오에서 아침 교통 라디오 방송 《가로수를 누비며》 를 1972년부터 1989년까지 17년 동안 진행했다. 하지만 1986년에 자신의 외아들 송창진이 한남대교(당시에는 제3한강교)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하며 큰 충격을 받아 잠시 방송 활동을 중단하였으며, 《가로수를 누비며》 역시 3년 뒤인 1989년에 완전히 하차했다. 송해는 외아들의 사고사 이후, 2022년 6월에 타계할 때까지 평생 한남대교 근처로 다니지 않았다. 《가로수를 누비며》에서 하차한 것도 아들의 사고사 이후 기사들의 안전 운전을 독려하는 교통방송을 진행하는데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18년 1월에 부인과 사별했다.
송해 전국노래자랑 진행
송해는 1988년부터 KBS 1TV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해 왔다. 1988년부터 별세하기 22일 전인 2022년 5월까지 총 34년을 진행하였으며, 1994년 봄 개편으로 잠시 진행을 중단한 6개월을 제외하면 연속 진행으로는 총 27년 동안 MC로 출연하였다. 1994년 KBS 봄 개편 당시 잠시 송해가 하차하고 KBS의 김선동 아나운서로 MC가 교체된 적이 있는데, 시청자들의 항의와 이로 인한 시청률 하락으로 불과 6개월 뒤인 1994년 10월에 송해가 복귀했다. 전국노래자랑은 로스앤젤레스, 도쿄도, 베이징, 뉴욕, 런던 등 해외에서도 여러 차례 공개방송을 가졌으며 특히 대한민국에서 항공편으로 27시간이 걸리는 파라과이에서 공개방송을 진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송해 평양노래자랑
2003년에 송해는 평양에서 전국노래자랑 특집 《평양노래자랑》에 출연했다. 6.25 전쟁 중이던 1952년에 월남한 이후 51년 만에 방북길에 오른 것이었는데, 당시 북한 측에서는 송해의 월남 이력을 문제 삼아 체류 허가를 내주지 않아 기획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조선중앙 TV 아나운서 전성희와 함께 진행하였으며, 송해는 마지막 곡으로 《다시 만납시다》 가 합창으로 흘러나오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송해 고향 재령
송해는 방송을 마친 후 뒤풀이 자리에서 자신의 고향인 재령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만찬에 동석한 보위원이 "시간이 오래 흘러 거기 안 계신다"라는 말을 했다. 이때 송해는 자신이 월남한 지 52년의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했으며, 더 이상 모친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고향인 황해도 재령 군에서 전국노래자랑 녹화를 하고 싶다는 의향을 여러 차례 밝혀왔으나, 결국 그가 고인이 될 때까지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송해 코로나19 스페셜 방송 녹화
90세가 넘은 고령으로 2010년대까지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며 야외 녹화까지 무리 없이 소화하였으나, 2020년에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여파로 야외 녹화가 중단되어 스튜디오에서 스페셜 방송으로 녹화를 이어 나갔다.
송해 기네스북
2022년 5월 23일에 그는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 후, 송해의 건강도 악화되면서 결국 2022년 5월, 제작진에게 더 이상 진행이 힘들다며 하차 의사를 밝히기도 하였다.
송해 타계
2022년 6월 8일 아침,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자택에서 타계했다.
송해 낙상사고
자택 욕실에서 갑작스러운 낙상으로 쓰러져 타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해 6월 10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이 거행됐다.
송해 엄영수 방송코미디언협회자아 영결식
엄영수 방송코미디언협회장이 영결식을 진행했다. 엄영수는 "선생님은 '전국 노래자랑'에서 출연자와 그냥 대화만 하신 게 아닙니다. 선생님이 거친 그곳들은 재래시장이 되고, 무·배추밭이 되고, 화개장터가 됐습니다. 모두가 춤추고, 노래하고, 흥겹게 노는 자리를 깔아주신 우리 선생님은 할아버지·할머니를 청춘으로, 출연자를 스타로 만드는 마술사였습니다."라며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송해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송해의 부고 소식을 듣고 매우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보내 조문을 하였다. 이어 문화예술인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 했다.
송해 천국 노래자랑
후배 코미디언 이용식은 "이곳에서 전국노래자랑을 많은 사람과 힘차게 외쳤지만, 이제는 수많은 별 앞에서 '천국 노래자랑'을 외쳐달라"며 "선생님이 다니시던 국밥집, 언제나 앉으시던 의자가 이제 우리 모두의 의자가 됐다. 안녕히 가시라"라고 작별인사를 전했다. 고인의 영구는 후배 희극 배우 최양락, 양상국, 조문식, 유재석, 강호동 등이 운구를 맡았다.
같은 날 오후, 종로구 낙원동 송해길을 거쳐 한국방송공사 본관 앞에서 노제가 거행됐다.
김의철 KBS 사장은 "송해 선생님, 들리십니까. 대한민국 전국 공원에서, 널따란 운동장에서 '전국노래자랑'의 딩동댕 소리가 울렸습니다"라며 "선생님의 작은 거인 같은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고, 국민들과 웃던 그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부디 세상의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편히 영면하소서"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송해 해 무대에서 죽을 사람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나는 무대에서 시작해서 무대에서 죽을 사람이다. 다른 길로 가면 백 번 지게 되어있다. 죽는 날까지 TV에 나오고,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마지막 TV 출연일이 2022년 5월 15일이었고, 24일 후인 6월 8일 세상을 떠났으니, 무대에서 죽겠다는 생전 했던 약속을 지키고 세상을 떠난 셈이 되었다.
쉐보레 트래버스 장의차가 운구한 고인의 유해는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화장된 후 기세리에 도착했다. 송해는 6.25 전쟁 당시 통신병으로 참전했기 때문에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이지만, 그의 유언대로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에 있는 석옥이 여사의 곁에 안장되었다. 묘소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 송해공원 내 송해기념관 건너편의 야산에 있다.
송해 생애
송해는 생전에 방송사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한 덕분에, 그의 생애에 대해 본인이 직접 출연해 이야기한 방송 자료, 인터뷰 자료가 꽤 많이 누적된 편이다. 예능 포맷의 프로그램 중에 직접 그가 출연하여 그의 인생을 돌아본 작품으로는 힐링캠프(2014, SBS), 나를 돌아봐(2015, KBS2), 대화의 희열(2018, KBS2), 라디오 스타(2021, MBC) 등이 있고, 다큐멘터리로는 실향민으로서의 아픔을 언급한 송해야 고향가자(2019, MBN)가 있으며,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송해 1927(2021)이 있고, 그의 일생을 전기 형태로 극화한 예로는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2022, KBS2 )가 있다. 그 외에도 아침마당 출연을 자주 한 편으로, 패널로 출연해 진솔하게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 기사 자료로 전해지는 예가 많다.
일반적으로 고령자의 기억은 명확지 않거나 옛 시대의 저장매체 부족 때문에 검증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후대 사람이 그들의 생전 기록을 정리할 때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그리고 연예인들은 인터뷰에서 자신을 추켜세우거나 예능적 재미를 주려고 과장을 섞기도 한다. 전인권, 김태원이 그 예시다. 그러나 송해의 인생에 대한 회고는 비교적 명확하고 일관성이 있어 그런 문제가 적은 편이다. 물론 출생 연도에 대한 부분이나 몇몇 에피소드는 그의 기억의 한계 때문이거나 잘못된 기록을 방치한 때문이거나 기자 등 인터뷰어가 잘못 받아 적은 탓에 오류가 몇 차례 발견되었으나, 객관적 자료나 교차검증을 가능케 하는 타인의 인터뷰 등이 많아서 오류를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다.
이하 서술은 위에 언급된 자료나 뉴스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다.
송해 고향
본인이 직접 언급한 바에 따르면 송해는 1927년 4월 27일, 황해도 재령 군 재령읍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재령평야를 나 무리벌이라는 좋은 쌀이 나는 옥토로 기억하였다. 실제로 나 무리가 먹고 입고 쓰고도 남는다는 뜻이라 할 만큼 송해의 어린 시절에는 김소월이 '나무리벌 노래'라는 시에서 언급할 정도로 한반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였다.
송해 해주음악전문학교
어릴 적부터 끼 많은 개구쟁이로 동네에서 꽤 유명했다고 전해지며,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했다고 한다. 윤극영의 《반달》 같은 노래를 어렸을 때 불렀다고 한다. 14살 때부터 공연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했다고 한다. 아버지, 어머니, 형, 여동생이 있었는데, 형은 자신이 해주음악전문학교에 입학할 즈음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갈 길을 가겠다며 집을 나갔다고 한다. 위로 형제가 더 있었지으나 영아 사망률이 높던 시기라 숨진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소상인이기에 이사를 많이 했는데, 이 과정에서 결석을 많이 하여 소학교는 남들보다 2~3년 늦게 나왔다고 한다. 소학교를 마치고 재령 제2중학교를 나왔다고 한다.
송해 성악 공부
1949년 황해도 해주음악전문학교에 만 22세 나이로 그의 끼를 눈여겨보며 예술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 어머니의 영향 하에 아버지의 반대를 뚫고 입학해 성악과에 들어가 성악을 공부하였다. 이는 그가 월남 후 남한에서 전공을 살려 방송인의 삶을 산 계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1년에 한 번씩 경연대회를 했는데, 그때마다 합창단원으로 평양의 모란봉극장 무대에 섰다고 한다. 스스로 이념이나 분단 등을 잘 몰랐던 때로 언급하며, 예술이 좋았고, 평생 그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전쟁이 터질 때까지 누가 누구의 편을 드는지도 파악을 못했다고 한다.
송해 피난
하지만 학업은 오래가지 못하고, 이듬해인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초기에는 고향(재령)에 머물렀는데, 이 당시 구월산 일대에 활동하던 공산당 유격대의 모병, 대한민국 국군의 북진 후에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2~3천여 명 규모의 패잔병의 약탈을 피하려고 인근 마을에 숨었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1950년 12월 인민군과 중공군이 남하하던 때 다시 나가려는데, 당시 어머니에게 "얘야, 이번엔 조심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에 "걱정 마세요."라면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두고 나왔는데, 그것이 생전의 마지막 인사였다. 조선일보의 6.25 관련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저 대화를 하고 어머니가 준 가래떡이 마지막으로 집에서 먹은 밥이라고 한다. 또한 조선인민군과 중공군의 진주와 포격을 피해 재령에서 남쪽 항구인 해주항으로 피난을 갔다 보름 정도 걸린 이 길에서 인민군의 포격과 기관총 세례를 피하다 철교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다고 한다.
1951년, 24세 시절의 송해
북한 땅이 되어 버린 해주에서 건너편의 섬 연평도로 은밀히 나룻배를 타고 도착한 뒤, 연평도에서 LST선에 타면서 부산까지 내려왔다. 이때 실향민으로 배 위에서 “바다야 내 갈 길 어디냐”는 생각에 지금의 이름, 즉, 바다 해(海) 자를 예명이자 아호로 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훗날 주민등록 체계가 확립되고 나서 그의 본명이 된다.
송해 피난선
피난선을 타고 도착한 부산항에서 그는 앞사람만 따라다니다 군에 입대해 통신병으로 복무하면서 1953년 7월 27일 휴전 메시지를 직접 타전하였다. 그때 당시 쓰던 모스 부호를 말년에도 또렷이 기억해 내었다. 그리고 당시 군대 선임이 혼자인 그에게 여동생을 소개해 줬는데, 그녀가 바로 그의 부인 석 옥이다. 데뷔 이전의 내용이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송해 역시 6.25 전쟁 참전용사라 국가유공자이며, 그의 사후 장례식장에 국가유공자증이 영정과 함께 진열되면서 대중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송해 정극 배우 활동
1980년대 당시까지 그를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직업은 코미디언이었으나, 그는 이미 1960년대부터 다수의 영화 및 TV 드라마에도 출연하였고, 드라마 주제곡도 부르는 등 (당시 가창 앨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멀티 엔터테이너의 원형(原型)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연예 활동에 비해 정극 연기 경력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나 1980년대까지 약 1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여 어느 정도 중견 연기자 수준의 필모그래피를 갖췄다. 여기에 1990년대 이후로는 전국노래자랑이 소재로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에 특별출연한 예가 몇 차례 있는데 이를 모두 더하면 20여 편 정도의 정극 연기를 하였다.
송해 가수 활동
1970년, 43세 시절의 송해
전국노래자랑 MC로서의 명성이 워낙 높아 다소 조명이 잘 되지 않기는 했으나, 송해의 가수로서의 활동도 대중문화, 특히 중장년층 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공로로 고평가를 받는다. 송해는 가요무대에 자주 출연하여 과거 악극단 시절의 창법과 발성을 고스란히 보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나이가 들며 활동이 미약해진 다른 동료 가수들과는 달리 말년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함으로써 그 자체로 인간문화재에 준하는 수준의 과거 문화 전승자 역할을 하였다. 또한 80세를 훌쩍 넘기고도 단독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가 하면, 2018년 《딴따라》라는 제목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 등 나이를 잊은 활약을 하였다. 그가 취입한 앨범은 '홍도야 우지 마라'와 같은 과거 전통 히트송들을 커버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후에는 본인의 오리지널 곡도 다수 발표했는데 《나팔꽃 인생》, 《유랑청춘》, 《내 인생 딩동댕》, 《내 고향 갈 때까지》 등의 대표곡을 남겼다. 사망 직전까지도 무대에서 아무런 흐트러짐 없이 여러 곡의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도 직접 오르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다.
송해 19988년 전국노래자랑 진행 초창기 시절
2005년, 78세 시절의 송해
아들을 먼저 보낸 충격을 잊기 위해 출연한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1988년 5월 8일부터 1994년 5월 8일, 그리고 1994년 10월 16일부터 2022년 6월 8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MC를 맡은 전국노래자랑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역대 한국 현역 방송인 역사상 가장 장수한 최연장자 기록(만 95세)이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또한 전국노래자랑을 34년 동안 진행하여 국내 단일 TV 프로그램 최장수 진행자를 경신, 기록했다. 1994년 5월에 잠시 하차했다 같은 해 10월 16일에 복귀했다는 점을 감안하여, 전국노래자랑 진행 기간을 이 복귀 시점부터 계산하더라도 이미 25년을 훌쩍 넘겼으므로 국내 단일 TV 프로그램 연속 진행 최장수 기록까지 보유하고 있다.
송해 전국노래자랑 복귀
앞 문단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송해는 하나뿐인 아들을 일찍 잃은 슬픔에 방송을 쉬었으나, 당시 전국노래자랑 PD 안인기(안성기의 친형)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 송해와 인연이 있어 그의 진행 능력을 눈여겨보다 직접 그를 찾아가 "송 선생님, 이렇게 쉬고 계실 때가 아니올시다. 우리 바람이나 쐬러 다닙시다."라고 하며 그의 방송 복귀를 적극 설득했다고 한다. 송해가 진행을 맡기 전 MC는 당시 KBS 아나운서 최선규로, 최선규는 당시 전문 MC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돌발 상황이 잦은 현장 녹화에서 매끄러운 리액션이 부족했고,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지도 못해 출연자들이 부르는 곡을 온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았던 탓에 적절한 멘트를 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송해 1927 내 인터뷰 중 발췌) 안인기의 설득 끝에 송해는 전국 노래자랑을 통해 방송에 복귀하였고, 가수 출신으로 다져진 가창력으로 때때로 분위기를 띄워주고, 서민적이고 푸근한 이미지와 재치 있는 멘트로 방송의 재미를 살렸으며, 오랜 진행 경력에서 오는 매끄러운 진행 능력은 방송의 콘셉트와 완전하게 맞아 들어갔다. 이를 바탕으로 그의 진행은 오래지 않아 전 국민을 매료시켰다. 그때부터 시작된 전국노래자랑과 그의 30년이 넘는 동행은 한국 방송사의 전설 중의 전설로 남게 되었고, 첫 방송 때 이미 환갑을 넘긴 송해는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기점으로 비로소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송해 전국노래자랑 양봉업자
말 그대로 전국노래자랑이다 보니 괴짜 참가자들도 한두 번씩 출연하기 마련인데, 가장 유명한 사례로 2010년에 온몸에 벌들을 붙이고 나온 양봉업자 가 있다. 이때 송해가 보여준 대처 능력은 관록의 극치임과 동시에 대인배 인증이라고 할 수 있다. 저 방송 직후에 KBS 시청자 게시판은 송해를 찬양하는 글과 저런 사람(양봉업자)을 왜 내보냈냐는 글이 반반이었다.
송해 일요일의 남자
특히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높으며, 80살이 돼도 90살이 돼도 여전히 "우리 오빠", "송해 오빠"로 불리는 자타가 인정하는 "일요일의 남자"가 됐다. 앨범도 내고 개인 콘서트를 연 적도 있을 만큼 노래 실력도 수준급이다. 전국노래자랑에서 초대 가수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를 열창하는 송해
송해 꾸준함
이러한 꾸준함은 송해에 대한 후대의 평가도 높였다. 젊은 시절 송해는 비슷한 연배의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 곽규석 등에 가려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동년배 다른 스타들이 하나둘 먼저 세상을 떠나거나 은퇴하는 동안 그는 전국노래자랑에서 사람들과 직접 전국 방방곡곡 살을 맞대며 90세를 넘기면서까지 현역으로 왕성히 활동했고 별다른 잡음도 없이 생활한 덕에 국민 MC 일인자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게 되었다.
송해 남북체육교류협회 남북 응원단
KBS 대화의 희열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마다 밝히기를, 생애 마지막 전국노래자랑을 자신의 고향인 황해도 재령 군이나 학업을 했던 해주시에서 하고 싶다고 하였으며, 이젠 고인이 되었을 자신의 어머니를 초상화로 만나기도 하였다. MBN에서 방영한 특집 프로그램 '송해야 고향가자'에서, 자신의 고향 황해도 재령 군 쪽으로 가기 위해 남북체육교류협회의 남북 응원단으로 합류하면 북한으로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방송 당시(2019년) 또다시 남북관계가 틀어지면서 남북체육교류협회 경기도 9월 말로 연기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창궐로 방북이 더욱이 힘들어지게 되었다. 결국 2022년 6월 8일, 한(恨) 많은 세상을 떠나면서 생전에 이루고 싶어 했던 '생애 마지막의 전국노래자랑을 자신 고향에서 하고 싶다'는 뜻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송해 이순재 실시간 검색어
2012년 9월, 전국노래자랑에 불참한 이후로 2022년까지 10년 동안 그의 건강과 관련되어 보도가 자주 되었고, 또래 연예인인 이순재와 함께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라도 하면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줄 알고 철렁하는 가슴을 한껏 쓸어내린다는 방송인이었다.
송해 전국노래자랑 녹화 촬영 불참
2010년, 83세 시절의 송해
2012년 9월 22일, 전국노래자랑 녹화 촬영을 돌연 불참하였다. 이유는 피로 누적. 그것도 녹화 때 리허설을 하다 피로 누적과 통증 호소 등으로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80대의 최고령인 점 때문에 와병설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건강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85세라는 고령의 나이 때문에 건강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주목받을 일. 해당 녹화 진행은 전국노래자랑의 단골 심사위원인 작곡가 이호섭이 하였다. 그리고 추석특집 외국인 노래자랑에도 불참해 후배 방송인 허참이 대신 진행하였다. 2012년 11월 18일에도 개인 사정으로 불참하고 이호섭이 대신 녹화를 진행하였으나, 다음 주 진행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2016년 11월 19일 89세로 가수 유지나와 함께 출연한 《아버지와 딸》 무대
송해 아버지와 딸
2016년 11월 19일, 트로트 가수 유지나와 함께 《아버지와 딸》이라는 노래를 발매했고, 발매 당일 MBC 쇼! 음악중심에 특별 무대로 출연하였다. 예상치도 못한 프로그램에 등장하면서 방송 직후 큰 화제를 모았고,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는 바람에 '송해 선생님 무슨 일 터진 줄 알았더니 음중에 친히 나오셨다더라'와 같은 반응도 많았다.
송해 아내 지병으로 별세
2018년 1월 20일에 아내를 지병으로 떠나보냈다. 부부가 같이 입원했는데, 아내가 먼저 숨진 것이다. 발인식에서 "붙잡으면 무슨 소용 있나. 조금 먼저 갈 따름이야. 열심히 애들 보살필 테니까 마음 놓고"라며 비통한 심경을 전했다.
송해 전국노래자랑 설 특집 녹화
2019년 12월 31일 다시 입원했는데, 처음에는 폐렴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감기몸살로 보도되었다. 연합뉴스 보도 때문에 전국노래자랑 측은 2020년 1월 12일 설 특집 녹화는 다른 MC가 대타로 대신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전국노래자랑의 32년을 맞는 송해의 빠른 쾌차를 바라는 댓글을 올렸다. 이후 회복하여 퇴원했다고 한다.
송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행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방송이 타격을 입게 되었으며 전국노래자랑도 타격을 입게 되었다. 2020년 3월 1일 ~ 2020년 6월 28일까지는 스페셜 방송 다시 보기 형식으로 대체되었으며, 2020년 7월 5일부터 다시 하는 녹화는 지방 촬영 대신 스튜디오에서 연령별 노래자랑과 특별판으로 대체했다.
송해 유튜브 근황올림픽
2021년 9월 13일, 유튜브 근황올림픽에 출연해 근황을 알렸다. 몸무게가 7kg 정도가 빠진 야윈 모습으로 등장하여 영화 송해 1927을 홍보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1년 10월 21일, 전국노래자랑으로 친분이 깊은 現 악단장 신재동이 진행하는 라이브 '콩자반쇼'에 출연하여 영화를 홍보하였으며 고령의 나이인지라 1부만 출연했다.
송해 라디오스타
2021년, 94세 시절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송해
송해 여러분 고맙습니다.
2022년 1월 31일에는 KBS 2 TV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를 방영했다. 공교롭게도 다음날인 2월 1일에 평소 송해가 본인 다음으로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맡으면 좋겠다고 밝힌 허참이 간암으로 인해 72세의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2022년에는 코로나19 예방백신을 3차까지 접종 완료했으나 돌연 코로나19(돌파감염) 확진 판정을 받았다.
4월부터 정상적으로 전국노래자랑을 녹화하며 MC 활동을 재개한다는 소식이 떴다. 송해, ‘전국노래자랑’ MC 복귀 “9일 녹화 참여”
2022년 5월 14일 오후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했다.
송해 마지막 방송
2022년 5월 15일에 방영한 전국노래자랑(충남 당진시 스페셜로 스튜디오 녹화로 대체)에서 다음과 같은 클로징 멘트를 하였고, 이 멘트는 송해 생애 마지막으로 전국노래자랑에서 한 클로징 멘트가 되었다.
요즘 철도 좋고, 여러분들 뭐 오랫동안 시달리고, 답답했습니다. 사실 이 화창한 계절이 돌아왔으니까, 여러분들 활짝 열린 세상 나오셔서 금수강산의 맛을 실컷 보시기 바랍니다. 아, 시간이 다 되었죠? 네, 자 저희들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한 박자 쉬고) 안녕히 계십시오.
이날 보조 MC로 같이 스튜디오 녹화에 참여하였고 클로징 멘트도 함께 한 임수민은 송해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인 6월 8일 KBS 뉴스 패널로 참석해 당시 상황을 설명했는데, 그날 녹화일에 송해가 부쩍 건강이 좋지 않아 보이고 멘트 반응도 조금씩 늦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래도 금방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2022년 5월 17일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송해 스스로 “더 이상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맡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는 뜻을 제작진에 밝혔다고 한다.
송해 기네스북 등재
2022년 5월 23일 기네스북의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 등재를 기념하는 공식 인증서 전달식에 참석하여 직접 소감을 밝혔고, 이 날까지도 투병 전에 비해서는 부쩍 수척해졌지만 또렷한 발성으로 소감을 밝히는 등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전국노래자랑 제작진 또한 송해의 건강 상태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지방 현장 녹화는 어렵더라도 스튜디오 녹화라도 진행하는 식으로 송해의 방송 복귀를 고민하던 상황이었다.
송해 야놀자 앱 광고
2022년 6월, 그가 모델로 출연한 야놀자 앱의 광고가 송출되기 시작했다. 당시 그가 광고 촬영을 하기에는 건강상 여의치 않아서, 방송에 나오는 그의 모습은 AI 합성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주변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날까지도 서울 종로구에 그의 이름을 따 조성된 '송해길'을 거닐고 식사를 하였으며 그곳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도 정상 출근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중들은 그가 머지않아 방송에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송해 별세
2022년 6월 8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당시 인근에 살던 딸이 아침식사를 하러 올 시간이 지나도 송해가 오지 않자, 자택으로 찾아갔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송해를 발견해 119에 신고하였다. 오전 8시 19분쯤 소방당국이 송해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 이미 송해는 숨을 거둔 상태였다고 한다. 시신은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겨졌다.
사실 송해의 건강 상태는 연초부터 좋지 않았다. 3월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입원했고, 퇴원 뒤에도 건강이 나빠 5월에도 다시 한번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았다. 5월 23일 기네스 세계기록 등재 수여식 당시 인터뷰를 가졌는데, 살이 많이 빠지고 수척해진 모습이 나왔다. 사망 4일 전인 6월 4일부터 전국노래자랑의 야외 녹화가 2년 만에 재개됐는데, 장거리 이동 등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불참했을 정도로 이미 건강 상태가 상당히 악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5월 입원 당시 언론에는 건강에 큰 이상이 없다고 발표하긴 했지만, 언론 보도와는 달리 건강이 이미 많이 상해있었던 것. 팬데믹 이전까지 전국을 누비며 왕성히 활동하다 갑작스레 장기적 활동 중단에 이르다 보니 건강이 점차 악화된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야외 녹화 중단 이후로 체중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바쁘게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면 되려 건강이 안 좋아지는 케이스. 송해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위드 코로나 선언 후 방역수칙 준수 아래 야외 녹화에 돌입했어야 그를 오래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일각의 아쉬움도 있다.) 점입가경으로 코로나 19 감염이 건강을 크게 상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코미디언 엄영수는 팬데믹만 아니었어도 훨씬 오래 노래자랑을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송해 빈소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고, 장례 형식은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3일간 치렀다. 원래 5일장으로 예정되었으나, 유족의 뜻에 따라 3일장으로 축소되었다. 유족들은 원래 가족장을 희망했다고 하나, 합의 하에 협회장으로 치러졌다.
송해 장례위원장
장례위원장은 코미디언협회장 엄영수가 맡았으며, 코미디언 석현, 김학래, 이용식, 최양락, 유재석, 강호동, 이수근, 김구라 그리고 코미디언이자 지상파 3사 코미디실장을 맡은 김성규(KBS), 고명환(MBC), 정삼식(SBS)이 장례위원을 맡았다. 조세호, 유동근, 이순재, 이미자, 임성훈, 김흥국, 전현무, 김숙, 임백천, 장민호, 장윤정, 양상국, 쟈니 리, 심형래, 송가인, 정동원, 이상벽 등 다수 후배 코미디언, 가수, 배우들과 김동연, 황교안, 주호영 등의 정계 인사들이 조문했으며, 나훈아, 이준석, KBS 예능센터장 조현아 등의 인물들이 조화를 보냈다.
송해 추모
그의 사망 소식에 많은 동료 연예인들은 물론 네티즌들도 하나같이 큰 충격이라는 반응과 함께 그를 추모했다. 오랫동안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해 오며 시청자들에게 친근한 인상을 쌓았고, 무엇보다 현역 최고령 연예인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 때문에 시청자들의 충격이 큰 편이다. 정치권에서도 그의 죽음에 여야를 불문하고 애도를 표했다. 대통령 윤석열은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 조화를 보냄과 함께 깊은 애도를 표하며 문체부장관 박보균을 통해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 했다.
송해 전국노래자랑 약속
생전에 그는 죽을 때까지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마지막 방송이 사망 1달 전인 5월 15일 충남 당진시 편이기에 송해는 사망 24일 전까지 녹화를 진행했다. 전국노래자랑이 코로나 사태 이후 정상적인 방송 진행을 거의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송해는 자신이 시청자들에게 했던 약속을 끝내 지키고 떠났다. 해외 특집은 물론 금강산과 평양에서도 노래자랑을 진행했지만, 자신의 고향 황해도 재령 군에서의 녹화는 끝내하지 못했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와 AP통신, 일본의 NHK 등 여러 외신들도 송해의 사망을 보도하며 추모했다.
송해의 영결식 현장
영결식은 코미디언 협회장으로 엄숙하게 진행됐다. 엄용수는 추도사에서 이제 천국에서 노래자랑을 진행하라며 울먹였고, 헌화와 분향에 참여한 유족들과 후배들 역시 통한스러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그의 상징인 전국노래자랑 오프닝 멘트가 나오자 참석자들이 단체로 "노래자랑!"을 외치는 장면은 송해의 커리어를 말해주기 충분했다. 운구는 유재석, 강호동, 최양락, 임하룡, 양상국이 맡았고 영결식 뒤 송해의 사무실이 있는 종로구 낙원동의 상록회와 송해길을 들렀다. KBS 본관 앞에서 노제를 치렀는데, 한국방송공사장 김의철이 참석했으며 KBS 측에서는 본관 건물에 그를 추모하는 대형 현수막을 걸었다. 전국노래자랑 악단이 느린 버전으로 편곡한 오프닝 음악과 올드 랭 사인 이 조곡으로 연주되었다. 피날레 곡으로 송해의 나팔꽃 인생이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연주되었다.
시신은 김천화장장에서 화장했고, 생전에 "석 여사(아내)의 묘지 곁에 영면하겠다는 송해의 뜻을 따라 아내의 고향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에 안장되었다.
송해의 사망으로 현역 최고령 연예인은 1934년생인 이순재가 되었다. 또한 초대 MC 이한필(위키 리) 이어 전국노래자랑 역대 MC들 중 두 번째로 세상을 떠났다. 3대 MC 고광수는 송해가 세상을 떠난 지 약 1개월 만인 7월 4일에 사망하였다.
송해가 세상을 떠나면서 대한민국 1세대 코미디언들은 모두 별세했고 , 악극단과 극장에서 시작해 우리네 안방극장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그들은 대한민국 연예계의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송해
송해(2019년)
출생 1927년 4월 27일
일제강점기 조선 황해도 재령 군
사망 2022년 6월 8일(95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국적 대한민국
활동 기간 1955년~2022년
학력 해주예술전문학교 성악과(중퇴)
배우자 석옥이(1934년~2018년)
가족 사위 김학수, 양희천
외손주 양정우, 김혜림, 양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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