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周炫美 | Ju Hyun-mi
출생
1961년 11월 5일 (61세)
전라남도 광주시 서석동
(現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
국적
대만 국기 중화민국 →
대한민국 국기
대한민국
배우자
임동신(1957년생)
자녀
아들 임준혁(1991년생) , 딸 임수연
가족
조카 달짜
학력
한성화교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약학 / 학사)
종교
가톨릭 (세례명: 소화 데레사)
데뷔
1985년 '비 내리는 영동교'
활동기간
1985년 ~ 현재
플랫폼 현황
유튜브 아이콘 주현미 TV
구독자 20.2만 명 [기준]
조회수 78,036,243회
별명
수도꼭지
주현미 음반
2022년 싱글 《윤중로 연가》
2022년 다큐 OST 싱글 《미시령(그 여자)》
2021년 주현미&필윤 Jazz Project 앨범 《Wind from Cuba/ 비 내리는 영동교/ 흐린 비/ 울면서 후회하네/ Yo, Como Esta/ Love Letter/ 바다와 푸른 밤/ 신사동 그 사람》
2021년 듀엣곡 《사랑만 해도 모자라》김수찬
2020년 20집 《여인의 눈물/ 꽃피는 청계산/ 세 번의 사랑/ 상심/ 돌아오지 마세요/ 물망초 사연/ 길/ 그대와 차차차/ 금동아 은동아/ 바람이 되어/ 그 여자, 그 남자/ 천일홍》
2019년 KBS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OST 《야래향/ 석양에 띄우는 편지》
2018년 싱글 《여정》
2018년 MBC 부잣집 아들 OST 《그대를 불러 봅니다》
2015년 주현미 향토가요 《소백산》
2014년 주현미 30th ANNIVERSARY ALBUM 《빗속에서/최고의 사랑》
2013년 tvN 꽃보다 할아버지 OST 《2013 대지의 항구》
2011년 주현미의 러브레터 프로젝트 음반 《내일 가면 안 되나요/ 여백》
2006년 17집 《어허라 사랑/ 달아 달아》
2003년 16집 《정말 좋았네/ 사랑가》
2000년 15집 《러브레터 (Love Letter)/ 없었던 일로 해요》
1996년 싱글 《인생유정/ 첫사랑》
1993년 14집 《첫사랑/ 정으로 사는 세상》
1992년 13집 《또 만났네요/ 애인》
1991년 12집 《사랑이야기/ 추억으로 가는 당신》
1990년 11집 《잠깐만/ 단심》
1989년 10집 《짝사랑/ 추억 속에서》
1988년 9집 《신사동 그 사람/ 스카이라운지에서/ 다시 보고 또 보고/ 비에 젖은 터미널》
1986년 8집 《내가 왜 웁니까/ 눈물의 부르스》
1986년 7집 《첫 정/ 태평무》
1986년 6집 《빗물이야/ 연인들의 돛단배》
1986년 5집 《탄금대 사연/ 월악산》
1985년 4집 《울면서 후회하네/ 빗물이야》
1985년 3집 《잊어야지/ 때로는 그리움이》
1985년 2집 《님아 가지 말아요/ 월미도를 아시나요》
1985년 1집 《비 내리는 영동교/ 길면 3년 짧으면 1년》
1984년 메들리 음반 《쌍쌍파티 1~5집》
1976년 기념음반 《고향의 품에/어제와 오늘》 - 가수로 공식 데뷔한 것이 아니라 주현미의 노래 실력을 인정하신 아버지의 권유로 15세 때 사촌동생과 같이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일종의 연습생을 하면서 작곡가 정종택과 함께 기념음반을 낸 것이다.
주현미 방송 출연작품
1986년 MBC《쇼 내 고향 큰 잔치》
1987년 MBC 《12시 올스타 쇼》
1987년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1988년 MBC 《화요일에 만나요》
1989년 MBC 《세상 사는 이야기》
1989년 KBS2 《자니 윤 쇼》
1989.02.12 MBC 《가요초대석》
1989년 KBS2 《사랑방중계》
1990년 MBC 《밤의 가요쇼》
1990년 MBC 《사랑의 퀴즈》
1990년 KBS2 《가족오락관》
1992년 MBC 《나의 노래 나의 인생》
1992년 SBS 《주부만세》
1992년 KBS2 《밤으로 가는 쇼》
1992년 KBS2 《신혼은 아름다워》
1994년 KBS2 《밤과 음악 사이》
1994년 SBS 《집중 여섯 명의 여자》
1994년 SBS 《스타 서울스타》
1994년 SBS 《스타와 이 밤을》
1996년 MBC 《가고픈 고향, 그리운 고향》
1996년 SBS 《이주일의 투나잇 쇼》
1996년 SBS 《우리는 여고동창》
1997년 SBS 《굿 나이트 쇼》
1997년 SBS 《좋은 아침》
1998년 KBS1 《사랑의 리퀘스트》
1998년 KBS2 《스타스페셜 나의 노래》
1999년 KBS1 《아침마당》
2010년 SBS 《스토리쇼》
2011년 KBS2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2012년 KBS2 《이야기쇼 두드림》
2012년 TV조선 《토크쇼 노코멘트》
2012년 JTBC 《박경림의 오! 해피데이》
2013년 JTBC 《히든싱어》
2013년 JTBC 《효재의 정원》
2013년 6월 23일 KBS 1TV 《강연 100℃》 - 49회
강연주제 : 아버지의 선물
공감온도 : 97℃
2014년 채널A 《광화문 콘서트》
2014년 KBS2 《밀리언셀러》 - 국민사연 노래가수
2014년 MBC 《별바라기》
2015년 KBS2 《후계자》
2017년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2018년 MBC 에브리원 《비디오스타》
2020년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2020년 SBS 《트롯신이 떴다》
2020년 MBN 《인생앨범-예스터데이》
2020년 KBS2 《트롯 전국체전》
2021년 KBS2 《수미산장》 - 8회
주현미 라디오 출연
2010년 ~ 2016년, 2020년 ~ 현재 KBS 제2라디오 《주현미의 러브레터》 - 진행
주현미 드라마 출연
2019년 KBS 2TV 주말연속극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 왕웨이 역 (특별출연)
주현미 광고 출연
1995년 스타 녹즙기
1994년 코웨이 정수기 (With. 이순재)
1993년 한독 미아리산 아이지
1992년 코웨이 정수기
1990년 LG생활건강 하모니 섬유
1989년 빙그레 (라면 세대, 매운맛이라면, 우리 집 라면 등)
주현미 수상
2020년 제1회 트롯어워즈 트롯 100년 가왕상
2014년 제6회 서울 석세스 대상 문화부문 문화대상
2012년 제12회 대한민국 전통가요대상 여자 7대 가수상
2011년 제1회 대한민국 다문화예술대상 10대 예술인상
2010년 제1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통령상
2001년 제21회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2000년 제20회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2000년 제7회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전통가요가수상
1996년 제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전통가요가수상
1995년 한국연예협회 선행연예인 문화체육부장관 표창
1992년 MBC 10대 가수상
1991년 MBC 10대 가수상
1990년 MBC 10대 가수상
1990년 국제가요제연맹(FIDOF) 디스턴드 어코드상
1990년 제17회 한국방송대상 여자가수상
1990년 제5회 골든 디스크 본상
1989년 MBC 10대 가수상
1989년 제4회 골든 디스크 본상
1988년 MBC 10대 가수상
1988년 제8회 KBS 가요대상 대상
1988년 제3회 골든 디스크 대상
1987년 제7회 KBS 가요대상 인기상
1987년 제2회 골든 디스크 본상
1986년 MBC 10대 가수상
1986년 제2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주제가상
1986년 제1회 골든 디스크 본상
1985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여자신인가수상
1985년 KBS 가요대상 여자신인가수상
1981년 제2회 MBC 강변가요제 장려상 (진생라딕스 보컬)
주현미 기타 활동
연예인 봉사 단체 《한마음회》 회원 (現)
문화 복지 사단법인 《열린 문화》출범 발기인 겸 홍보 위원 (2004년 3월 5일)
충청남도 청양군 명예시민 및 청양 고추 홍보 대사 위촉 (2008년 4월)
경북 적십자사 홍보 대사 위촉 (2008년 12월)
주현미 가족 관계
배우자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락 보컬 출신의 기타리스트 임동신이다. 조카는 2008년, 〈사랑의 싸인〉으로 데뷔한 가수 달짜 (본명: 임선영)이다. 아들은 임준혁으로 미국 버클리 음대에서 공부하고 왔다. 딸은 임수연으로 가수다.
주현미(周炫美, 1961년 9월 27일 ~ )는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이다. 약사 출신 가수로, 대표곡으로는 《비 내리는 영동교》, 《잠깐만》, 《또 만났네요》 등이 있다.
주현미 비 내리는 영동교
주현미는 중국 산동성 연태시 모평현 출신 주금부와 전북 김제시 출신 정옥선 사이에 광주에서 태어난 4남매 중 장녀로 중국인 혼혈 3세이다. 이름의 중국어(한어) 발음은 저우쉬안메이(병음: Zh? u Xuanm? i)이다. 그녀의 정식 가수 데뷔곡은 《비 내리는 영동교》이다.
아버지 주금부는 한의사(중의사)였기 때문에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한약재 사업을 하였고, 자연스레 의학에 관한 학문을 접했다.
주현미 고향의 품에
초등학교 5학년때인 1972년에 아버지의 지인인 작곡가 정종택에게 노래 레슨을 받다 정종택의 제의에 의해 처음으로 기념음반 《고향의 품에》(1976년 발표 전곡 작사/작곡:정종택)를 녹음했으며 1980년, 중앙대학교에 다닐 무렵 MBC 《강변가요제》에 약대 음악 그룹 (진생라딕스)의 보컬로 출전하여 입상하였다.
주현미 한울약국 약사면허증
1984년,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면허증을 취득하였으며 서울 중구 필동에서 한울약국을 개업하여 약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약사로 개업할 당시 고객에게 주로 민간요법을 처방하여 그다지 수입을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주현미 약사 가수
약사로 일하던 당시 작곡가 정종택의 권유로 작곡가 김준규와 함께 메들리 음반 《쌍쌍파티》를 녹음하고 쌍쌍파티의 히트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이를 계기로 1985년에 데뷔곡 《비 내리는 영동교》(정은이/남국인/김용년 편)를 머릿곡(타이틀 곡)으로 하는 정규 1집 앨범을 발표하고 정식으로 가수에 데뷔하며 국내 최초 약사 가수로 화제를 모았다. 당시 가수의 직업이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여 데뷔 후에도 약 9개월간은 자신의 약국을 운영했다.
주현미 눈물의 부르스
첫 앨범의 타이틀 곡 〈비 내리는 영동교〉가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신인상까지 받았지만, 가수의 길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1986년 〈눈물의 부르스〉 (정은이/남국인/김용년 편), 1988년 〈신사동 그 사람〉(정은이/남국인/김용년 편) 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10대 가수상과 최우수 가수상을 차지하며 정통 트로트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발 더 나아가 198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여가수로 등극하여 김수희, 심수봉과 함께 당시 여성 트로트계 빅 3으로 불리면서 그녀들과 함께 무대와 공연을 펼쳤으며 여러 앨범을 제작하는데 참여하기도 했다.
주현미 차인태의 아침살롱
1986년에 발표된 4집에서는 〈탄금대 사연〉 (이병환/백봉), 〈월악산〉 (이종학/백봉)이 히트되었는데 〈탄금대 사연〉은 B1A4의 멤버 진영의 외할아버지인 이병환이 작사했고 백봉 선생이 작곡했다. 월악산이란 곡도 백봉이 작곡했는데 1984년 MBC 차인태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차인태의 아침살롱》이란 프로그램에서 월악산 정상에서 촬영을 하여 노래를 직접 들려주며 소개된 것을 본인 앨범에 수록한 곡이다.
주현미 중화민국에서 대힌민국으로 국적 변경
1988년 2월 14일에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이자 락그룹 엑시트의 보컬이었던 임동신과 결혼하였고 1989년에야 비로소 중화민국에서 대한민국으로 국적을 변경하였다. 결혼 후 더욱 승승장구하여 결혼식을 올린 1988년에 「KBS 가요대상」을 비롯한 주요 가요부문 상들을 휩쓸으며 1990년, 아시아 가수로서 처음으로 국제가요제연맹(FIDOF)에서 시상하는「디스턴트어코스」상을 수상하였다.
주현민 잠깐만
1990년에는 〈잠깐만〉을 발표하였다. 양수경의 3집 수록곡인 《당신은 어디 있나요》는 원래 김범룡이 주현미를 위해 만든 타이틀 곡이었지만 주현미가 〈잠깐만〉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하자 김범룡이 곡을 다시 가져갔고 그 과정에서 양수경의 강력 요구로 양수경의 노래가 됐다. 이 과정에서 트로트 스타일이었던 것을 양수경의 형식(슬픈 노래)으로 바꿨다.
주현미 정통 트로트 가수 시련
1990년대 락, 발라드라는 장르가 대한민국 대중가요를 강타하기 시작하면서 정통 트로트를 부르던 가수들에게는 시련에 부딪혔다. 주현미도 이 시기에 〈추억으로 가는 당신〉 (이호섭/임기석(임동신)/정경천 편) , 〈또 만났네요〉(이건우/김영광/김광석 편)가 대중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지기는 했으나 이후 점점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어 활동 비중이 줄었다.
1991에 발표한 11집에서는 1989년 〈짝사랑〉 (이호섭/김영광/정경천 편) , 1990년 〈잠깐만〉 (이호섭/김영광/최춘호 편)을 작사한 작곡가 이호섭이 전곡을 작사하였는데 그중 〈추억으로 가는 당신〉이 히트했는데 이곡은 이호섭이 작사하고 남편이자 매니저, 프로듀서였던 임동신이 임기석이란 이름으로 작곡한 곡이다.
1993년에는 본격적으로 일본 음반사와 계약을 맺어 일본에도 진출하였다.
주현미 러브레터
2000년 8월, 《러브레터》를 발표하고 가요계에 복귀하여 다시금 트로트 가수로 각광받았으며 2003년에 〈정말 좋았네〉(윤정/정환)를 히트시켰다. 또한 이듬해 8월에는 KBS가 평양 모란봉에서 녹화한 《전국노래자랑》 평양 편 (= 평양노래자랑)에 남측 가수 대표로 가수 송대관과 함께 출연하기도 하였다.
주현미 정통 트로트 가수
주현미는 대한민국에서 이미자, 김연자, 문희옥 등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는 몇 안 되는 가수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에는 다양한 음악 장르를 소화하는 후배들과의 음악적인 교류도 활발하다. 듀엣곡으로는 케빈육과 함께 부른〈사랑이 무량하오〉(양인자/김희갑)가 있다. 2008년에 조PD, 작곡가 윤일상과 함께 힙합, 트로트를 조합시켜 발표한 〈사랑한다〉 (조 PD/윤일상)가 인기를 얻었으며 2009년에는 소녀시대 서현과 함께 〈짜라자짜〉 (김도훈, 황성진/김도훈)라는 세미 트로트곡을 발표하기도 해 화제가 되었다. 2010년부터 KBS 해피 FM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MC로 활동하고 있다.
주현미 약사 활동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 면허증을 가지고 있다. 딸이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원한 어머니의 바람이 컸다고 한다. 때문에 엘리트 연예인으로 불렸다. 다만 화교전형 의혹은 있다. 대학 졸업 후 서울 중구 필동에서 '한울약국'을 차려 운영했으나, 수줍음 타는 성격이라 사업 수완이 없었던 데다 원칙을 고수한 탓에 손님이 없어 일찍 가게를 접었다고 한다. 당시는 의약분업이 이뤄지기 전이었는데, 증상과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영양제나 항생제(소위 마이신) 등을 달라는 손님들에게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하고 운동, 식이요법 등을 권유하다 보니 별난 약사라고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 데뷔했을 때 별칭이 '약사가수'였다. 당시에는 대학가요제 같은 경우가 아니면 대학을 나온 가수도 적어서 대졸자 가수는 '학사가수'라 부르기도 했는데 약사출신이니 특별한 인상을 준 것이다.
주현미 진생라딕스 MBC강변가요제
주현미는 음악인생은 중앙약대 그룹사운드 진생라딕스(인삼뿌리) 2기가 1981년 제2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장려상을 수상하면서부터 대중가수로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인 중학교 2학년 때(1975년) 이미 첫 음반을 발매한 적도 있다. 이때 첫 음반은 작곡가 정종택이 맡았었는데, 주현미가 성인이 되어 발매한 앨범도 정종택이 맡았다.
주현미 쌍쌍파티 돌풍
주현미가 대중적으로 처음 알려진 계기는 바로 '쌍쌍파티' 열풍. 약사생활을 하던 주현미는 1984년 무렵에 김준규 랑 같이 메들리 앨범 쌍쌍파티를 발매했는데 이것이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다. 80년대부터 한국사회는 경제성장이 가시화되면서 자가용이 대중화되기 시작되었다. 운전하면서 들을 트로트 메들리 음반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많이 팔았는데, 이른바 고속도로 휴게소 음반으로 대히트를 친 효시격인 앨범(카세트테이프)이 바로 '쌍쌍파티'이다.
이 앨범은 같이 듀엣으로 녹음한 게 아니라 따로따로 녹음한 걸 편집에서 합친 앨범이다. 그러나 잘 편집되어서 그런 기색을 느끼기 어렵다. 주현미가 이때 정식으로 데뷔한 가수 신분은 아니었지만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쌍쌍파티는 300만 장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소위 말하는 길보드 등을 합친 수치고 과장도 들어갈 수 있지만, 어쨌건 길보드 포함해서 100만 장 이상 정도는 팔렸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1985년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쌍쌍파티로 가요계 전체를 뒤흔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최고의 인기가도를 달렸다고 할 수 있으며, 가수 데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현미 799만 장 판매고
쌍쌍파티의 기세를 바탕으로 주현미는 1985년 1집 앨범 ≪비 내리는 영동교≫로 데뷔하게 된다. 쌍쌍파티의 기세를 그대로 이어가며 주현미는 최고 가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85년 5월에 나온 매일경제의 기사에 따르면 5개월간 메들리집을 포함해 9개의 음반을 발표했는데 7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고 한다. 이 역시 길보드 추산이고 과장이 들어갈 수 있는 수치지만 엄청나게 팔았던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주현미는 이 당시 약사생활을 했기 때문에 음반취입만 하고 있을 뿐 방송활동을 하지 않는 얼굴 없는 가수였다. 주현미는 입소문과 길거리 리어카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만으로 이 정도의 판매고를 일궈낸 것이다.
주현미 인천항 갈매기 인천시가로 지정
동아일보에서도 나훈아 남진 이후 잠잠하던 트롯계가 주현미 단 한 명으로 인해 기지개를 켜서 방송무대에 다시 활발하게 나왔다고 묘사할 정도로 실로 압도적인 기세와 인기였으므로 매체에서 주현미는 85년 가요계를 뒤흔들었다고 평가되었고, 당연히 MBC 10대 가수상에서 여자 신인상, KBS 가요대상에서 여자 신인상을 동시에 무난하게 수상할 것으로 점쳐졌다. 예측 그대로 데뷔와 동시에 주현미는 2대 가수상의 신인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경향신문은 5년 연말 가수상 여자부문 논평은 상반기 최대 히트곡 '빙글빙글'에 이어 '유혹하지 말아요'로 연타석 안타를 쳐낸 나미가 단연 앞서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는 '아! 대한민국'과 '도시의 거리'를 히트시킨 정수라에 이어 '아! 옛날이여'로 J에게의 명맥을 그런대로 이은 이선희가 그 뒤에 있다고 평한다. '하늘사탕 잉크처럼'의 이은하와 '그대에게 벗어나고파'의 윤시내도 언급하고 있으며, '사랑의 미로' 최진희와 '영동블루스'의 김연자 김수희 등 트로트 3인방도 변수가 될 것이라고. 이때 주현미는 신인가수였지만 인천시에서 인천항 갈매기를 인천시가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주현미 약국 문 닫고 가수생활 전념
85년 9월 약국의 문을 닫고 가수생활에 전념하게 된 주현미는 86년에도 1급 가수로의 행보를 이어간다. 비록 약사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톱스타가 되면서 소속사간의 잡음과 금전적인 문제가 엉켜 있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 전업 가수로 울면서 후회하네를 발표한 주현미는 비록 84~85 정도의 신드롬급 인기는 아니었지만 톱스타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1986년 상반기는 트로트가 강세였으나 후반기에는 주현미를 제외한 트로트 가수들이 약세에 들어가고 청소년 대상 발라드가 강세였다고 할 만큼 86년 주현미의 인기도는 안정적이었다. 그를 반영하듯 1986년에는 여러 상을 수상했다.
MBC 십 대 가수 : 구창모, 김범용, 윤수일, 전영록, 조용필, 나미, 이선희, 정수라, 주현미, 최진희. 남녀 신인 김승진, 유미리. 신인그룹 높은 음자리. 최고 인기가요 조용필의 허공. 특별상 황금심.
KBS 가요대상 여자 부문 후보 : 후보로는 나미, 윤시내, 이선희, 이은하, 정수라, 주현미, 최진희가 선정되었고 난 너에게의 정수라가 가져가며 2연패를 달성했다.
골든디스크 : 조용필, 구창모, 이광조, 이문세, 김수희, 민해경, 이선희, 최진희, 주현미, 들국화 선정. 남녀 신인상 김승진, 김완선.
86년 주한 외국인들을 상대로 조사한 주한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노래 탑 7중 7위에 꼽히기도 했다. 1위 나미 빙글빙글, 2위 김범룡 바람바람바람, 3위 라나 에 로스포 사랑해, 4위 김원중 바위섬, 5위 조용필 돌아와요 부산항에, 6위 해바라기 모두가 사랑이에요, 7위 주현미 비 내리는 영동교.
주현미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여가수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주현미는 87년부터 지금의 남편과 열애를 시작했다. 당시 공개적으로 연애 사실을 밝혔던 주현미는 88년 2월에 화촉을 올리게 되는데, 결혼까지 이어지는 연애 때문인지 TV 방송이나 무대 활동은 바쁘게 하였으나 87년에 새로운 음반을 발표하는 일은 없었다. 기존의 곡으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역주행 곡이 있긴 하였으나 MBC 10대 가수에 선정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KBS 가요대상 후보에는 선정되었다. 그녀 자체의 인기는 여전히 절정이었다는 것은 87년의 설문조사에서 증명된다. 신곡 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87년 연말 시행된 갤럽조사에서 주현미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여가수에 18.1%로 1위를 차지하며 차점자인 이선희의 8%를 2배 이상 따돌리는 결과를 보여줬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에서도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가 1위를 차지했고, 다음이 조용필의 허공이었다. 뿐만 아니라 9위도 주현미의 눈물의 블루스가 차지하는 등 87년 주현미의 인기는 여전히 전성시대를 달리고 있었다.
주현미 해외동포 신청곡 집계 1위
해외동포들이 KBS 라디오 방송곡에 보내는 신청곡 집계도 주현미가 가장 많았고 다음이 조용필, 정수라, 나훈아, 이미자, 최진희, 패티김 순이었다. KBS 라디오 방송국의 또 다른 조사에 의하면 30, 40대 주부들의 1 픽으로 주현미의 눈물의 블루스가 꼽혔다. 그리고 조용필의 허공, 최성수의 애수,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벗님들의 사랑의 슬픔이 뒤를 이었다. 신혼 여성들에게는 해바라기의 내 마음의 보석상자, 최성수의 남남,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 벗님들의 사랑의 슬픔,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순이었다. 미혼여성들에게는 벗님들의 사랑의 슬픔,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 최성수의 애수, 김연숙의 그날, 해바라기의 내 마음의 보석상자 순이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주현미는 7명밖에 되지 않는 1억 원대 계약금 가수의 한 명이었고, 밤무대 출연료도 정수라, 민해경, 전영록, 구창모, 조영남, 김연자, 김완선 등과 더불어 3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다. 1위는 나훈아였으며, 그다음이 이미자와 조용필이 비슷한 급으로 대우받았다. 4위 그룹은 최성수, 최진희, 나미, 김수철, 김범용, 윤수일, 이은하, 윤시내였다. 5위 그룹은 삼태기, 숙자매, 장미화, 홍수철, 방미, 현숙, 최헌, 김학래, 남궁옥분이었다. 특히 주현미와 윤시내가 많은 공연양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주현미 결혼 후 복귀행보
88년 주현미는 신사동 그 사람으로 돌아와 결혼 이후 성공적인 복귀행보를 밟는다. 신문기사의 평가로는 88년 기성가수들이 부진하고 신인가수들이 돋보였다는데 주현미는 가요 프로그램 1위도 무난히 차지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신문에서는 한편으로 올림픽, 불안한 국내정세 등으로 88년의 가요계가 전반적으로 많이 흔들렸다고도 평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때도 가요계가 부진했듯이 88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와중에도 리스피아르조사연구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여가수 선호도 1위를 차지하고, 전국 DJ친목회의 조사에서도 가장 인기 있었던 여가수 트로트곡으로 신사동 그 사람이 뽑히는 등 1위 행보를 밟아나갔다. 결국 연말 시상식에서 KBS, MBC 양대 방송사의 가요대상과 최고인기가수상을 둘 다 휩쓸었다. 골든디스크상까지 가져가며 올림픽 때문에 흔들리던 88년 가요계에서도 정상의 자리를 확고히 지켰다.
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
이렇게 보면 84년 쌍쌍파티 이후 사실상 90년대 초반까지는 국내 여자 가수는 주현미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때만 해도 한물갔다고 생각했던 트로트를 남녀노소 대중화로 이끈 장본인이다. 1988년에는 신사동 그 사람의 대 히트에 힘입어 MBC, KBS 연말 가요대상을 동시에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1989년 짝사랑,
주현미 화교 출신
화교 출신이라 차별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주현미가 상을 타면 왜 외국 가수에게 국내 가수상을 주냐고 비아냥대는 기자도 있었다고. 그래서인지 비슷하게 차별받던 흑인 혼혈인 인순이와 동질감을 느껴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초중고를 모두 화교 학교를 다녔던지라 중국어도 잘하며 방송에서 중국어 노래도 곧잘 부른다.
주현미 BGM
참고로 경상남도 진주시의 시외버스 업체인 부산교통의 안내방송에 주현미 노래의 일부분이 BGM으로 나온다고 한다. 주로 "어제 같은 이별"과 "비 내리는 영동교"가 나온다.
주현미 주현미 TV
이후 방송출연보단 콘서트, 디너쇼 위주로 활동하다 2018년 유튜브 채널 주현미 TV를 시작해 매주 영상을 올리며 옛 전통가요를 보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후에도 유튜브 채널의 조회수 2천만에 구독자 10만을 달성했다. 그리고, 2020년 11월 25일에 실버박스 언박싱을 하였다.
2019년 이후 미스터트롯의 준결승 레전드로 출연하였다.
주현미 얼굴 없는 가수
1984년 쌍쌍파티로 데뷔 이후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두하면서 가요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기까지 최고의 자리를 지킨 여가수라고 할 수 있다. 전술된 신문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1980년대는 트로트계의 쇠퇴기였으나, 주현미의 등장 이후 다시 트로트가 힘을 받아 인기 기간을 좀 더 끌게 되었으니 가요계 흐름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약사와 가수를 병행하던 시절 얼굴 없는 가수 생활을 했음에도 이견 없이 신인상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처럼 순수하게 실력으로 지상파 연말 가요대상 전관왕, 2연패를 달성하고 누적 3회를 수상했다. 음반 판매량, 히트곡 수, 노래 실력, 자기 관리 등 여러 면에서 트로트 여제 중 한 명이라 해도 흠잡을 곳이 없다.
주현미 화려한 기교와 맑은 음색
곡의 스타일과 창법도 기존의 트로트와 상당히 차별화된다. 본인의 포부도 그랬고 어려서 이미 음반을 발매해 본 것이나 락밴드 보컬로 음악을 시작했기에 데뷔 시기부터 이미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있었다. 당시 트로트 여가수 중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수많은 화려한 기교와 더불어 맑은 음색을 바탕으로, 거기에 약사 출신이라는 지적인 이미지까지 더해 기존의 텁텁하고 처연함 일색의 트로트와는 여러모로 차별화된 점이 많았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무리 없이 공략하며 스타로 군림할 수 있었다.
주현미 평론
다만 트로트 창법 특성상, 역대 보컬리스트를 논할 땐 발라드나 알앤비 위주, 소위 디바 스타일의 가수보다 언급되는 일이 적다. 사실 90년대 초반까지의 전성기가 지나간 이후 주현미는 나름대로 여러 장르와의 협업도 꾀해 가고 기존 노래도 열심히 부르는 등 활발하고 꾸준한 활동을 지속해 오긴 했으나 이렇다 할 새로운 족적을 남기지는 못하며 대중의 시선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그리고 발라드 대중화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쇼킹한 데뷔 이후 트로트의 쇠퇴가 두드러졌던 것, 주현미가 전성기 당시 남녀노소에게 고른 지지를 받았지만 높은 인기에 비하면 강렬한 팬덤형 가수는 아니었기에 히트곡이 없어지자 자연히 주목도 빠르게 사라진 것, 후대의 평가도 대표적으로 김완선이나 이선희와 같은 당시 청소년 팬덤형 위주의 가수들에게 쏠리는 것 등도 원인 중 하나이다. 또 나가수 등 여러 경연프로그램에서 증명되었듯이 가창력 평가는 감정선을 강하게 건드리는 발라드나 알앤비 디바 스타일에 이목이 쏠리는 것 등에 원인이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이나 설문조사, 시상식 등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볼 때 한국가요를 대표하는 보컬리스트 중 한 명이며 80년대 초중반까지 석권한 이은하의 뒤를 이어 80년대 중반부터 가요계를 지배한 여제였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주현미 트롯신
2020년 3월 4일부터 그 해 12월 말까지 방송했던 '트롯신이 떴다'에서 정용화의 발라드곡을 부른 뒤 청중장년들도 놀라워했다. 트롯뿐만 아닌 발라드, 팝송 등 여러 장르를 오가며 소화하는 가창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현미 비행기 탑승법
일각에서 주현미에 대한 우스갯소리로 떠도는 일화로는 주현미가 처음 해외를 나가는데 가수 조용필이 농담으로 "비행기를 탈 때는 꼭 약사면허증을 보여줘야 된다"라고 말했는데 주현미가 공항에서 출국하면서 정말로 약사면허증을 보여줬다는 일화가 있다. 국내에서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 시기는 1989년 이후이므로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행기 탑승법을 몰랐다.
주현미 쇼트커트
데뷔 초에는 쇼트커트이었다. 가요무대에서 진주에서 온 사연이 적힌 편지를 읽고 1986년 후반부터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노래의 파트가 끝날 때마다 눈웃음을 짓는 것도 무대 포인트 중의 하나였다.
주현미 작가 지망생
본래 작가도 지망했다고 한다. 안정적인 생활을 바란 어머니의 약사 권유는 가수활동에 대한 만류뿐 아니라 작가활동에 대한 만류도 있었다고.
전업 가수임에도 의외로 연기 이력이 있다. 대한민국 시트콤의 조상 격인 아하 복동네에 출연했다.
약사와 가수 생활을 병행하던 시절 약사 일을 아침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했고 남는 시간 음반 취입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때 체중이 엄청나게 빠졌다고 한다.
주현미 빚 1억
1980년대 초반 기준으로 1억 원의 빚이 있었다. 승용차가 100만 원 하던 데다가 당시 주택복권 1등 당첨금이 정확히 1억 원이던 시대에 그 정도의 빚이 있었다는 건 충격이 아닐 수 없었지만 워낙 인기 있는 가수이다 보니 비교적 빠르게 빚을 다 갚았다. 사실 1년에 364일을 공연했다고 할 만큼 무시무시한 속도로 돈을 벌었으니 그 정도의 빚은 문제도 아니었을 것이다.
주현미 에이즈(추정) 루머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에이즈 루머였다. 에이즈는 지금도 인식이 좋지 않은 질병이고, 완치하기는 거의 힘들어도 의학의 발전 덕분에 약 먹고 관리를 잘하면 증상 발현이나 전염력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일종의 만성 질환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 병 걸리면 무조건 사망하는 악질 전염병이라는 인식 + 동성애자들이 변태적 성행위를 해서 걸리는 질병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박혀있던 시절이라 이 때문에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안티가 생겨나기도 했다. 걸리지도 않은 질병에 걸렸다는 허위사실인 데다가 그 병이 역대 최악의 전염병이다 보니 마음고생이 정말 엄청났다고 한다. 2019년 이후까지 아무 일 없이 잘 살아가고 있으므로 이 루머는 당연히 거짓이다.
전성기 시절에는 1년 내내 딱 1일만 빼고 휴일 없이 방송과 지역 행사를 모두 수행한 적도 있었다. 참고로 그 하루는 현충일이라고 한다. 현충일에는 유흥업소들이 자체적으로 휴업하는 게 관례였기 때문이다.
주현미 하현우 친분
의외로, 하현우와 친분이 꽤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아들이 국카스텐을 추천한 이후, 그들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같이 공연을 한 적도 있고, 리더인 하현우는 따로 주현미의 집에 놀러 간 적도 있다고 한다. 한번 밥을 차려줬는데, 정작 하현우는 놀러 올 때마다 본인 먹을 걸 따로 싸왔다고 한다...
주현미 카메오
2019년 3월 23일부터 방영하는 드라마이자 본인이 OST도 참여한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중국 화장품 회사 회장 역으로 카메오 출연을 했다. 연기가 아주 자연스러워 호평을 받으면서 실검 1위를 차지했다.
2019년 7월 7일에는 KBS 전국노래자랑에 4년 만에 출연하여 신곡 '여정'을 열창해 많은 사람들의 앙코르외침과 호응이 매우 뜨거웠다.
1985년 데뷔했으므로 2021년 현재 데뷔 만 36년 차다.
주현미 환갑
환갑인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엄청난 동안이며 미인이다. 어지간한 50대보다 젊어 보일 지경... 유튜브를 보면 안다. 키도 165cm로 그 당시 가수치고 나름 큰 키였고, 지금도 전성기 시절 몸매도 유지하고 있다.
이주일과는 분야도 성향도 아주 딴판이었음에도 둘이 방송에서 만나면 아주 좋은 케미를 보여줬었다. '비 내리는 영동교'를 이주일이 하나하나 개사시키는 것을 주현미는 천연덕스럽게 잘 따라 하는 등의 무대가 여럿 있었다.
주현미 저서 '추억으로 가는 당신'
2020년 5월 35주년 기념으로 책을 출간하였다. 제목은'추억으로 가는 당신'이다. 한국가요 100년 역사에 주옥같은 명곡들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이 노래를 부르면서 느낀 것 , 생각도 적혀있다.
2022년 기준으로 가요무대 출연 횟수 1위다. 이는 2005년 출연 횟수 발표 때랑 똑같다.
2020년 4월에는 김미경 TV에 출연하여 여러 사연과 담소를 나누었다.
SBS 트롯신이 떴다에서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가 조미미라고 밝히며, 조미미 덕분에 자신이 가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한 바가 있다.
주현미 대표곡
비 내리는 영동교 (정은이/남국인/김용년 편) 1985년
길면 3년 짧으면 1년 (정은이/남국인/김용년 편) 1985년
탄금대 사연 (이병환/백봉) 1986년
월악산 (이종학/백봉) 1986년
눈물의 부르스 (정은이/남국인/김용년 편) 1986년
울면서 후회하네 (하늘이/안치행) 1986년
신사동 그 사람 (정은이/남국인/김용년 편) 1988년
짝사랑 (이호섭/김영광/정경천 편) 1989년
잠깐만 (이호섭/김영광/최춘호 편) 1990년
추억으로 가는 당신 (이호섭/임기석(임동신)/정경천 편) 1991년
또 만났네요 (이건우/김영광) 1992년
정으로 사는 세상 (김순곤/김영광) 1993년
러브레터 (이건우/김영광) 2000년
정말 좋았네 (윤정/정환) 2003년
어허라 사랑 (양인자/김희갑) 2006년
사랑한다 (Witn 조PD) (조PD/윤일상) 2008년
짜라자짜 (With 서현) (김도훈, 황성진/김도훈) 2009년
그다음은 나도 몰라요 (김병걸/정주희) 2010년
여백 (정욱/정풍송) 2011년
대지의 항구 (원곡: 백년설) - 꽃보다 할아버지 OST (남해림/이재호 1941) 2013년
여정 (재훈/정주희) 2018년
여인의 눈물 (이반석/이반석) 2020년
꽃 피는 청계산 (이반석/이반석) 2020년
세 번의 사랑 (이반석/이반석) 2020년
상 심 (이반석/이반석) 2020년
돌아오지 마세요 (김종창/김태호) 2020년
물망초 사연 (이반석/이반석) 2020년
길 (이반석/이반석) 2020년
그대와 차차차 (이반석/이반석) 2020년
금동아 은동아 (김종창/김태호) 2020년
바람이 되어 (김종창/김태호) 2020년
그 여자, 그 남자 (이반석/이반석) 2020년
천일홍 (이반석/이반석) 2020년
사랑만 해도 모자라 (윤일상/윤일상) 2021년
미정 (임준혁/임준혁) * 본인 아들이 신곡을 만들어 준다. 20
주현미
출생 1961년 9월 27일(62세)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주시 서석동
(現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
국적 대만 → 대한민국
활동 기간 1981년~
대표작(곡) 《비 내리는 영동교》, 《신사동 그 사람》, 《짝사랑》, 《잠깐만》, 《러브레터》, 《추억으로 가는 당신》, 《또 만났네요》, 《정말 좋았네》, 《내일 가면 안 되나요》, 《월악산》,《울면서 후회하네》, 《이태원 연가》, 《눈물의 부르스》, 《여백》, 《여정》, 《사랑가》, 《아버지》등.
소속사 CC 엔터테인먼트
배우자 임동신
가족 아버지 주금부
어머니 정옥선
아들 임준혁
딸 임수연
조카 달짜
종교 천주교 (세례명: 소화데레사)
수상 2020 제1회 트롯 어워즈 트롯 100년 가왕상
웹사이트 주현마 공식 웹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