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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자 <마스터>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프로필 나이 노래 남편(자녀) 재산 부산대 메들리

by 위키독스 2024.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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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자

金蓮子|Kim Yonja | キム・ヨンジャ

출생

1959년 1월 25일 (64세)

전라남도 광주시 사직동

(現 광주광역시 남구 서동 145-21)

거주지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국적

대한민국

신체

154cm, 47kg, O형

학력

광주수창국민학교 (전학)

광주대성국민학교 (졸업)

광주수피아여자중학교 (중퇴 / 명예졸업)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명예졸업)

종교

개신교

데뷔

1974년 〈말을 해줘요〉

(데뷔일로부터 50주년)

가족

어머니 이옥순, 여동생 김수진

소속사

상연기획, YJKcompany, 온웨이즈 로고 1

김연자 주요 활동

정규음반

오아시스레코드

1974년 허공에 띄운 사연(민정일) / 말을 해줘요(김연자)

1976년 엄마의 노래 / 나를 보고 있네요

1976년 봄비가 / 낯선 얼굴들

1979년 두 손을 잡아요 / 먼 훗날

1982년 갈길을 못 가네 / 남의 속도 모르고 / 히트레코드

1980년 알잖아요 내 마음 / 둘이서

1981년 어디쯤 가고 있을까 / 서울행 완행열차 / 지구레코드

1982년 1집 사랑을 위해 / 진정인가요

1983년 2집 망각 / 별곡

1984년 3집 타인의 얼굴 / 가면의 사랑

1985년 4집 당신은 / 추억의 목포항

1986년 5집 아침의 나라에서 / 씨름의 노래(4집 수록곡에 신곡을 추가하여 재발매)

1987년 6집 당신은 얄미운 나비 / 당신이 버린 사랑 / 한국음반

1988년 지울 수 없는 사랑 / 아침의 나라에서 / 다링레코드

1990년 터미널의 밤 / 정만을 남기고

 

김연자 기타

1983년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문주란) / 잃어버린 33년(김연자) - 지구레코드

대표곡

《못 잊을 건 정》(1976년)

《진정인가요》(1982년)

《수은등》(1984년)

《아침의 나라에서》(1986년) - 1988년 서울 올림픽 찬가.

《당신은 얄미운 나비》(1987년)

《朝の国から》(아침의 나라에서, 1988년)

《暗夜航路》(암야항로, 1989년)

《十三湖の雪うた》(도사호(주산호)의 눈 노래, 1990년)

《熱い河》(뜨거운 강, 1996년)

《人生海峡》(인생해협, 1999년)

《陽は昇る》(해는 뜬다, 2000년)

《愛☆アリガトウ》(사랑☆고마워, 2002년) - 2002년 FIFA 월드컵 찬가.

《北の雪虫》(북쪽의 눈벌레, 2002년) - 오리콘 엔카 차트 5주 연속 1위 곡.

《北の秋桜》(북쪽의 코스모스, 2003년)

《南十字星》(남십자성, 2005년)

《始発駅》(시발역, 2006년)

《命火》(명화, 2008년)

《夜明け前》(새벽 전, 2008년) - 오리콘 엔카 차트 3주 연속 1위 곡.

《約束》(약속, 2010년)

《再會》(재회, 2010년)

《情熱の バラ》(정열의 장미, 2011년)

《月下美人》(월하미인, 2012년)

《아모르파티》(2013년)

이외 다수.

김연자 TV 프로그램

TBC 《전국가요 신인스타쇼》(1974년) - 우승

NHK 《NHK 홍백가합전》(1989년, 1994년, 2001년)

KBS1 《한민족 리포트》(2004년 5월 24일)

MBC 《네버엔딩 스토리》(2008년 4월 23일)

MBC 《설특집 - 나는 트로트 가수다》(2012년)

KBS1 《전국노래자랑》

KNN 《쑈! TV유랑극단》

KBS1 《가요무대》

MBC 《MBC 가요베스트》

KBS1 《열린 음악회》

KBS부산 《뮤직 토크- 쇼 가요 1번지》(2017년 5월 16일)

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노래 안 하면 입에 가시 돋나 마돈나(참가자) , 내 노래는 우아우아우아~해! 절대 시들지 않는 가창력! 장미여사(130대~135대 가왕)

KBS2 《2018 KBS 가요대축제》

KBS1 《TV는 사랑을 싣고》

MBC 《생방송 행복드림 로또 6/45》게스트 896회 (2020년)

SBS 《트롯신이 떴다》 고정출연

JTBC《히든싱어 6》(2020) - 우승

MBN 《알토란》-게스트

EBS1 극한직업 전국을 달린다 트로트가수 편

JTBC 《아는 형님》-게스트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게스트

TV조선 《미스터트롯 2》- 심사 위원

KBS2 《노머니 노아트》- 2회 초대 가수

TV조선 《미스트롯 3》- 심사위원

김연자 드라마

2019년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 - (특별출연)

김연자 수상

1983년, 1984년 MBC 10대 가수가요제 본상

2001년 《일본 레코드대상》 기획상

2003년 《일본 레코드대상》 요시다 다다시(吉田 正)상

2003년 《제36회 일본 유선대상》 최다 리퀘스트상

2004년 《일본 유선대상》 유선음악우수상

2005년 《일본 유선대상》 유선음악우수상

2020년 제1회 트롯어워즈 트롯 100년 가왕상

2021년 제12회 대중문화예술상 대중문화 예술분문 대통령표창 수상(트로트가수 최초)

 

김연자 광고

2002년 동원 F&B 양반 김연자김치

2019년 아모레퍼시픽 아모레 카운슬러 모집

2019년 주식회사 건강을 향한 지도 관절보궁

2020년 한국다케다제약 알보칠

2020년 이마트 아몬드파티

김연자 홍보대사

2001년 5월 광주 비엔날레 명예홍보대사

2001년 9월 한국방문의 해 명예홍보사절

2002년 3월 농림부 김치 홍보대사

2006년 9월 전라남도 관광명예 홍보대사

2010년 4월 광주광역시 남구 효사랑 홍보대사

2011년 10월 광주문화재단 홍보대사

2020년 1월 고흥 방문의 해 홍보대사

 

김연자 원조 한류 스타

대한민국의 가수. 조용필과 함께 원조 한류 스타라고 할 수 있는 거물 가수이다. 일본에서는 8090년대 엔카의 여왕으로 불리며 큰 성공을 거뒀고, 이로 인해 일본 내에서 인지도가 매우 높은 한국인이다. 2010년대 이후는 국내 활동에 주력하고 있으며, 2016년 이후에는 아모르파티가 국내에서 역주행하며 대히트를 쳐 젊은 세대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김연자 마이웨이

1959년 1월 25일 전라남도 광주시 사직동(現 광주광역시 남구 서동 145-21)에서 태어났다. 큰집과 같이 살았는데, 할머니가 한 집에서 두 명이 태어나면 안 된다며 둘째인 김연자의 엄마에게 밖에서 낳으라고 해서 엄마는 마당에서 김연자를 출산했다.

 

김연자 아버지 이발소

아버지가 이발소를 했는데 김연자가 5~6세 때부터 매일 손님 앞에서 노래를 시켰다고 한다. 단골손님이 오면 아버지는 "연자야 노래 불러라"라고 외쳤다고. 아버지는 이발소 영업이 끝난 후에 가게 안에서 1시간 동안 전축으로 이미자 노래를 틀고 김연자에게 연습하라고 한 뒤 나갔다고 한다.

 

김연자 노래자랑

국민학교 3학년쯤 큰엄마가 내일 광주공원에서 열리는 노래자랑에 나가라며 참가금 2~3백 원을 줬는데, 당시 김연자의 용돈은 10원이었다. '어린 나이에 유행가 부르면 안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동요를 불렀는데, 떨어져서 참가상으로 소주 1병을 받았다고 한다. 참가금으로 큰돈을 줬는데 상을 못 탔다고 큰엄마에게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김연자 가요교실 학원

국민학교 4학년 때 가요교실 학원 선생에게 돈이 없다고 말하니 무료로 다니게 해 줘서 중학교 2학년 때까지 5년을 다녔다. 또래 친구들은 동요를 좋아했지만 김연자는 트로트를 불렀다고 한다.

 

김연자 벚꽃 노래자랑

국민학교 5학년 때 광주의 대표적인 노래 대회였던 (벚꽃 노래자랑)에 친구 정우순과 함께 출전했다. 펄 시스터즈 등이 똑같은 옷을 입고 노래하니까 우리도 똑같은 옷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엄마가 시계를 전당포에 맡긴 돈으로 옷을 맞춰줬고, 인기상을 탔다. (벚꽃 노래자랑)은 생방송으로 진행됐던 프로그램이라 많은 광주시민들이 시청을 했고, 그 후 수피아여자중학교에 입학하니 노래자랑에 나왔던 김연자를 알아봤던 학우들이 있었다고 한다.

 

김연자 중학교 오락부장

중학교 시절에는 오락 부장이었다. 선생들이 자주 교단에 불러내 노래를 시켰다고 한다. 1973년 14세였던 중학교 3학년 2학기 때는 열흘 정도 공연장에 따라다니느라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쇼를 다 보고 학교에 왔더니 수업 미달로 정학을 당했고, 아버지가 차라리 학교를 중퇴하고 서울 가서 가수를 하는 게 어떻냐며 열차표를 직접 사줬고 한다. 엄한 아버지를 무서워했기에 거역을 하지 못하고 그렇게 김연자는 홀로 상경했다.

김연자 작은아버지

서울에 상경한 그녀는 미아리의 작은아버지 집의 작은 방에서 작은아버지 내외, 사촌동생 4명과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하나 광주 바닥에서는 알아주는 가수 유망주였으나, 서울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작은 아버지와 오디션을 보러 다녔는데 다 떨어졌다고 한다. 작은아버지가 '쇼에 가서 조카가 노래하니 써주지 않겠냐'라고 물어보고 다녔지만 모두 탈락. 나훈아 콘서트에도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문전박대당했다고 한다.

 

김연자 수양엄마

후에 어머니와 동생들이 따라서 상경하여 단칸방 사글세 살이를 시작했는데, 옆집에 부유한 수양엄마 집에서 매일 전축을 틀고 노래 연습을 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계속 낙방하여 답답한 마음에 상경한 어머니를 따라 관악산 어느 절로 올라갔고, 그 절에 있던 스님이 '21세에 꽃가마를 탈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는 김연자가 출세하기 시작한 나이와 비슷하다.

김연자 동백 아가씨

동향 출신의 선배 가수 이영숙의 소개로 청계천에 있던 <오아시스 레코드> 사장에게 오디션을 봤고,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부른 것으로 기억한다는 김연자는 그 자리에서 드디어 합격한다. 하지만 말은 합격인데 가난한 집안에 수입이 없는 김연자의 처지를 안 사장은 데뷔가 아니라 회사 3층 공장에서 월급 2만 원에 카세트테이프 만드는 일을 시킨다. 일하다가 1시간은 2층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작곡가 김학송에게 노래를 배우며 지냈다.

 

김연자 오아시스레코드

어느 날, 오아시스레코드에서 한 평론가가 어느 카바레에 신인가수가 필요하다며 오디션을 권했다. 낮엔 일하고, 밤엔 나이를 18세로 속이고 비어홀, 카바레 등 3곳의 밤무대에서 월 6~7만 원을 받으며 노래생활을 시작했다. 손님이 많은 시간엔 유명 가수가 노래하고, 무명인 김연자는 한가할 때 노래를 했다. 당시엔 이미자와 목소리가 비슷해 '제2의 이미자'라고 내세웠다.

김연자 아버지 원망

아버지가 경제적 지원은 없었고, 딸이 가수가 됐다며 학교를 못 다니게 했다고 한다. 남들은 공부하고 친구들하고 놀 때 자신은 서울에서 노래를 해야 해서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었다고 한다. 너무 빨리 사회인이 되어버려 학생의 청춘이 없었다고. 결국 김연자는 경제적 가장 역할을 하여 두 동생을 대학에 다닐 수 있게 한다. 물론 나중엔 가수가 되게 해준 아버지께 고마워한다고 한다.

 

김연자 인기 있는 트로트 가수

데뷔 처음에는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81년에 《노래의 꽃다발》이라는 트로트 메들리 앨범을 발표하여 히트시키며 인기를 얻었다. 1982년부터 정통 트로트 《진정인가요》(작사: 정욱/작곡: 정풍송)를 부르며 인지도를 얻었고 1984년에 본격적으로 정통 트로트 《수은등》(작사: 유수태/작곡: 김호남)이 히트하면서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다. 김연자는 데뷔 후 주로 정통 트로트를 불렀으나 1986년에는 트로트 장르에서 벗어난 노래들이 인기를 얻었는데 대표적으로 《씨름의 노래》(작사: 조운파/ 작곡: 길옥윤)는 민속씨름 대회에서 장사가 탄생했을 때 들려지는 노래로 선정되었다. 또한, 서울올림픽 찬가로 알려진 《아침의 나라에서》(작사: 박건호 /작곡: 길옥윤)를 불러 대중적으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김연자 엔카의 여왕

1988년에 〈아침의 나라에서〉를 일본어로 개사하여 히트시킨 후, 본격적으로 일본을 주 무대로 활동 영역을 개척하여〈暗夜航路 (암야항로)〉,〈十三湖の雪うた (도사호의 눈 노래)〉,〈熱い河(뜨거운 강)〉등 여러 엔카곡들을 히트시키면서 일본의 대형 엔카 가수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연말마다 개최되는 일본의 음악 프로그램 《NHK 홍백가합전》에 3회 출전하기도 하였다. 서울올림픽 공식 주제가를 부르는 가수로 물망에 올랐으나 선정 과정에서 촌스럽다는 평가를 받아서 그룹 《코리아나》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김연자 일본 엄청난 인기몰이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던 김연자는 2001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식적인 초청을 받고 평양에서 공연을 개최하였으며, 그 외에도 사할린, 상파울루 등 해외 각지에서 콘서트를 개최하였다. 2002년에는 2002년 FIFA 월드컵 찬가였던 〈愛☆アリガトウ (사랑☆고마워)〉을 불렀고 그 해에 〈北の雪虫 (북녘의 눈벌레)〉로 오리콘 엔카 차트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2008년, 〈夜明け前 (새벽 전)〉으로 오리콘 엔카 차트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면서 엔카의 여왕으로 우뚝 섰다.

 

김연자 국내 복귀

그러나 2009년에 일본 활동 22주년을 끝으로 대한민국 활동을 공식화하였고 귀국과 함께 경쾌한 리듬의 트로트 《10분 내로》(작사: 이병오/ 작곡: 이호섭)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2012년 5월, 함께 일해왔던 남편과 이혼하고 (주)센슈 기획과의 업무 제휴가 종료되면서, 김연자가 직접 대표가 되어 일본에 새 회사(YJKcompany)를 설립하였다.

김연자 40주년 기념 콘서트

2013년, 2014년에는 〈아모르파티〉, 〈타이틀〉로 정통에서 벗어난 EDM과 트로트를 접목시킨 장르를 선보이며 활동하였다. 2015년에는 데뷔 40주년을 맞아 40주년 기념 콘서트를 개최하였으며 정통 트로트 〈쟁이쟁이〉를 발표하였다.

 

김연자 음반 역주행

발표된 지는 오래되었으나 《아모르파티》가 뒤늦게 서서히 알려지며 2018년에는 부산대 학생회의 초청으로 중·장년층 트로트를 부르던 가수가 대학 축제에서 공연을 하는 역사를 처음 쓰게 된다. 이후에 공연들도 많이 알려지게 되면서 연말에는 지상파 가요대상 프로그램에도 초청을 받아 후반부를 장식하게 된다. 이 곡은 10대와 20대 젊은 세대들에게도 폭발적인 반응과 공감을 얻었다.

김연자 정통 트로트 가수

김연자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꺾기 창법이 매력적인 가수이다. 일본에서 열리는 콘서트나 TV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자주 한복을 입고 나오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자신의 이름을 상표로 하여 김치를 판매하는 등 한국과 관련된 활동도 많이 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미자, 주현미, 문희옥 등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는 몇 안 되는 가수 중 하나이며 장은숙, 계은숙, 정재은 등 일본에 진출한 대표 한류 가수로도 주목받고 있다. 흔히 씨름대회에서 자주 울려 퍼지는 《천하장사》 역시 그녀가 부른 곡으로, 원래 제목은 《씨름의 노래》이다.

 

주요 히트곡으로는 수은등, 아모르파티, 10분 내로, 아침의 나라에서, 못 잊을 건 정, 천하장사 등이 있다.

 

김연자 일본에서의 성공

김연자는 <아침의 나라에서>가 올림픽 주제 가니까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일본 재진출을 결심한다.

 

1988년 6월 21일 갑자기 올림픽 주제가 변경이 발표되어 주제가 자격을 상실한 김연자는 크게 상심한다.

 

김연자 남편 일본 내 기획사 대표

남편은 김연자의 일본 내 기획사 대표를 맡아 그녀의 모든 스케줄과 수입을 관리하며 김연자의 성공에 공을 세운다. 남편은 가요계 인맥이 많았고, 남편 때문에 김연자를 도와준 사람들도 많았다. “두 번째로 일본에 갔을 땐 아무런 신경 쓸 일 없이 노래만 부르면 됐어요. 그땐 남편이 제 매니저가 되어주었어요. 남편은 어떻게 하면 가수 김연자를 세계로 통하게 할 수 있을까 연구하는 사람이에요. 어떤 때 보면 남편이 저보다 더 제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같아요. 남편 이 야쿠자라는 등의 소문은 말도 안 돼요. 정말 자상한 사람이에요.”

 

어쨌든 이 노래는 시판 2개월 만에 10만 장 이상 팔리며 히트한다. 덕분에 김연자는 일본에서 성공가도에 올라서 주로 일본에서 활동한다.

 

다음 해인 1989년 NHK 홍백가합전에서 아침의 나라에서를 불렀다.

김연자 북한 공연

2001년 <제19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 악단을 포함해 30여 명이 북한에 갔다.

 

4월 9일 평양 국제영화제회관콘서트홀(2,500명 수용)에서 콘서트.(김연자 씨 말과 맞지 않아 실제 이뤄졌는지 불명. 이 날 공연이 없는 문헌도 있음)

 

"원래 평양 공연을 3회 하기로 했는데(이틀 하기로 했다고 말하기도 함) 첫 공연 끝나고 두 번째 공연도 똑같은 회관에서 하기로 했는데, 뒤풀이하는데, 간부들이 숙소로 와서 갑자기 높은 분이 뒤쪽으로 날 부르더라. "열차 타고 12시 출발해야 한다. 공연하러 가야 하니 무거운 짐은 호텔에 놓고 악기랑 의상 등 간단히 쇼할 짐만 빨리 챙기라. 이유를 묻거나 따지지 말라." 회관에서 악기 가져오고 4월 9일 밤 12시 열차에 탔다. 좋은 침대도 있고 시설이 엄청 좋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김 위원장 전용 열차. 밤새 달려 다음날 아침 8시 30분쯤에 도착해 보니 함흥이었다. 김연자가 김정일 장군님 한번 뵙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저하고 남편만 또 차를 태워 또 어디로 이동을 시키더군요. 5분 늦게 도착해 한복 입고 대궐같이 엄청나게 큰 문이 있는 해변가 집 앞에 내렸다. 보초병들이 거대한 문을 열자 바로 거기에 김정일이 있었다. 엉겁결에 외쳤다. '와! 진짜다 진짜가 있다(어?! 실물이다 김정일 씨!)'." 김정일이 문 앞에서 5분 기다린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현관 앞에 서 있던 김정일은 손을 내밀며 20년 동안 좋아했던 가수를 비로소 만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인민복 차림에 생각보다 건강해 보였고 말투는 TV에서 보던 대로 힘차고 카랑카랑했다. 11일 오후 3시쯤 함경남도 함흥의 한 군부대 접견실에서 만났다. 오후 5시부터 90분 동안 대회의장을 임시방편으로 무대로 만들어 공연했다. 객석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즉석인터뷰를 하는 등 북한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자유분방한 무대였지만 앞 좌석에 앉은 김 위원장은 마치 심사위원처럼 미동도 않은 채 내 공연을 지켜봤다. 환갑인 김정일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더니 김정일이 몹시 부끄러워했다. "굉장히 무서운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다정하더군요. 공연 전에 40분 동안 같이 있더니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나는 김위원장의 오른쪽에 앉았다. 내가 공연 후엔 너무 지쳐 잘 먹지 못한다고 하자 그는 천천히 먹으라며 음식을 하나하나 놓아주기도 했다고 한다.

김연자 김일성 메들리 테이프

김연자의 메들리 테이프를 김일성이 선물 받아 듣고 좋아했다고 한다. "옛 가요를 묶어 발표한 메들리 앨범에 대해 김정일은 '아버지(김일성)와의 추억이 담겨있다. 82년도쯤 같이 들었다'라고 회상했다". 김정일은 81년 발매된 김연자의 '노래의 꽃다발' 메들리를 들은 후 열렬한 팬이 됐다고 했다. 20년 동안 김연자 노래를 사랑했다고도 했다.

 

한국 신문 1, 2에 쓰인 김정일의 "김연자는 왜 안 데리고 오느냐"란 말을 김연자가 보고 '가야지' 해서 김연자가 직접 말해서 갔다고 김연자는 말했다. 인터뷰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무서웠다. 노인들에게 우리나라 옛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효 콘서트를 계획했다. ‘타향살이’, ‘불효자는 웁니다’, ‘눈물 젖은 두만강’, ‘홍도야 울지 마라’, ‘대지의 항구’등 흘러간 대중가요를 선곡했는데, 이들은 북한에서도 널리 불려지고 있어 호응이 좋았다."

 

그전까지 일부만 몰래 남한 노래를 듣던 북한이었는데, 김연자의 공연은 김정일이 공개했다. 4월 12일 조선중앙 TV, 라디오방송인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 등이 녹화 방송했다. 이전엔 남한 가수가 북한에서 공연한 것은 TV로 중계되지 않았다. 별도로 방영된 예술인 대담 프로그램에서 만수대 예술단 지휘자 조정림 등은 김연자의 대단한 평판을 이미 오래전부터 들었지만 노래를 직접 듣고 보니 과연 듣던 바 그대로라고 칭찬했다. 전통적인 민요 창법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여러 가지 창법을 잘 배합해 독특한 형상적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가했다.

김연자 김정일 녹두부침

김정일은 농담을 잘했다. ‘녹두부침’ 같은 맛있는 음식을 남한에서는 왜 이상하게 ‘빈대떡’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고 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김정일은 북한 노래는 성악식 발성으로 통일돼 있어 남한의 트롯과 같은 창법이 그립다고 했다. 이수미의 '두고 온 고향',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이 애창곡이고 '찔레꽃', '개나리처녀' 등도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 남쪽 가수들 노래는 곡이 너무 빨라 뭘 노래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전자음악을 대중적으로 유행시킨 미국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를 비판하면서 이젠 그것도 싫증 났으니 생음악으로 되돌아올 것이라 했다. 다음 방문 때엔 가라오케에 가서 노래를 같이 부르자고 약속했다.

 

김연자 아모르파티

김연자는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를 좋아한 까닭에 작곡가 윤일상을 소개받는다. 윤일상이 "누나 어떤 노래하고 싶어?"라고 묻자, 김연자가 그동안 불러왔던 노래 주제들과 다르게 자신의 인생을 표현하고 싶어 "내 인생의 찬가"를 원한다고 대답하자 윤일상이 만들어 줬다. MR을 받은 김연자는 발라드풍의 음악을 예상했는데 생소한 EDM에 놀라고 감을 못 잡아 헤맸다고 한다. 노래할 타이밍을 분간할 수 없고 못 부르겠다고 윤일상에게 전화하여 가이드 보컬 녹음본을 받고서야 녹음했다. 엇박이 많아 연습 때도 어려웠는데 녹음 후에도 어려워서, 옆에서 잡음이 방해하면 틀린다고 한다. 지금도 무대에서 손으로 마디를 세는 모습을 보인다. 초기 라이브 때 많이 틀렸다.

김연자 채널A 분노왕

2013년 3월 27일 <채널A 분노왕> 방송에서 EDM과 트로트를 결합한 '아모르파티'가 최초로 공개됐다. 인터넷에 기재된 앨범 발매일은 7월 23일이다. 보통 신곡 앨범을 발매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지만, 신곡 앨범이 발매되기 전에 방송이나 콘서트에서 먼저 부르는 경우도 알게 모르게 있는데. 아모르파티가 후자의 경우에 해당되는 듯하다.

 

김연자 역주행 경위

2016년 KBS 열린 음악회(2016년 7월 10일 방영) PD가 이 노래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김연자는 아모르파티를 익숙해지기 전에 빨리 포기했기에 가사도 잊어버린 상황이라 처음엔 거절하였지만 PD가 꼭 불러 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EXO 다음 순서로 출연했다. 인터뷰 영상 알고 보니 ‘왜 이 좋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의아했다더라

 

김연자 윤일상 SNS

윤일상이 엑소 무대 끝나고 나가지 못한 채 앉아 있던 엑소 팬들이 아모르파티를 보고서 바로 sns에 팬캠과 추천글을 올려 소문냈다고 말했고, 그걸 들은 김연자가 언론에 말하여 그렇게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그것은 윤일상의 잘못된 추측이고, 그런 경위와 다르게 이 공연 영상을 본 사람이 인터넷에 소문낸 것일 가능성이 크다. 정작 열린 음악회에 엑소와 김연자가 함께 출연한 2016년에 계속 잠잠했기 때문이다.

김연자 아모르파티

그러다가 2017년 3월이 되어서야 <아모르파티>를 추천하는 트윗이 등장했다. 이 추천글이 좋은 반응을 일으키며 인터넷 여기저기 퍼지면서 알려졌다. 이 시기에 이를 통해 아모르파티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노래를 처음 접한 반응인 것으로 보아 이 시기 이전엔 <아모르파티>을 추천글이 올라와 반향을 일으킨 적이 없었을 것이다.

 

김연자 트위터 엑소의 팬

물론 이 트위터는 엑소의 팬일 수도 있으나 그렇더라도 적어도 열린 음악회 현장에 엑소 때문에 앉아 있다가 어쩔 수 없이 보게 됐다는 설은 틀릴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 트윗엔 관중이 찍은 "아모르파티"가 아닌 kbs 방송 영상이 링크됐다. 고로 공연 때 바로 팬캠이나 추천글을 올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후일 유튜브 하다가 <아모르파티>를 보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정황상 "열린 음악회 녹화 현장 엑소팬의 즉석 입소문에 의한 역주행설"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김연자 아모르파티 대히트 이후

어쨌든 역주행한 아모르파티의 대박으로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김연자는 제5의 전성기라고 말했다. 그래서 김연자의 히트곡으로 수은등보다 아모르파티가 먼저 떠오르거나, 김연자는 잘 몰라도 아모르파티는 아는 사람들도 많다. 초등학생들도 "아모르 누나"라고 부르면서 알아보는 등 트로트계를 초월한 전국적 인기를 누리게 됐다.

김연자 무한도전

2017년 5월 27일에 방영된 (무한도전)에 출연하며 더욱 인기가 많아졌다. 지상파 3사를 포함해 여러 주요 tv 쇼에 출연하며 방송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물 중 하나로 떠올랐다. 대기실에서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후배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며 큰 어른의 풍모도 과시한다. 현역 아이돌들의 나이가 보통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임을 감안하면 거의 젊은 할머니 뻘인 셈이다.

 

김연자 떼창 노래경연

부산대의 섭외로 가수 경력 처음으로 대학 축제 무대에 섰다. 부산대에서의 공연은 반응이 좋아 유튜브 조회수도 높게 나왔고, 다른 대학에서도 섭외가 많이 들어왔고, 뉴스로도 나갔다. 이에 김연자는 9월 서울 핸드볼경기장에서 '떼창' 노래경연(tvN 300)에 부산대 학생 150명을 초청했고, 부산대 학생들은 버스 3대로 상경해 아모르파티를 떼창으로 불러 상대 가수를 이기는 등 2차례나 서울로 올라가 출연했다.

 

김연자 시월제

부산대 총학생회가 가을축제 '시월제'를 개최한다고 하자 김연자가 감사의 뜻으로 부산대 재방문하여 무료공연과 장학금 지급을 했다.

김연자 가요대축제 엔딩곡

2018년 12월 28일 KBS 가요대축제 엔딩곡으로 선정되었을 때 그야말로 가요계 대통합을 이뤘다고 해도 될만한 위엄을 보여줬다. 사실 연말 무대의 엔딩 자리를 놓고 인기 아이돌 팬덤과 소속사 측의 보이지 않는 알력다툼이 생기기도 하는데, KBS가 이런 논란을 한 번에 잠재워버리는 신의 한 수를 뒀다고 할만한 기막힌 선택을 했다. 여담으로, 이 공연 당시 세계구급 아이돌이 안무를 모두 외우기라도 한 듯이 사실상의 백업 댄서 역할을 자처하자 해외의 K-POP 팬들은 "도대체 저 여자 가수가 누구길래 저런 광경이 나오느냐?" 라면서 크게 놀랐다고 한다. 또 다른 아이돌의 해외 팬들도 세계구급으로 유명한 아이돌을 백업 댄서와 뒷배경으로 깔아버리는 김연자의 위엄에 놀란 것은 마찬가지다. 그 덕분에 유튜브에서 김연자 동영상에 갑자기 외국인들의 댓글이 증가하는 일도 있었다.

 

불후의 명곡 400회 일본 특집의 1부인 399회(2019.04.20. 방송)에서 전설로 출연했으며 트롯 전국체전에 글로벌 팀 감독으로 출연했다. 유명가수 전에 출연했다.

 

후에 탈모르 파티로 리메이크되기도 하였다.

 

김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선거송으로 사용하였다.

김연자 전 남편 재일교포 2세

전 남편은 재일교포 2세 김호식(일본명: 오카 히로시), 지휘자 겸 앨범 프로듀서, 김연자의 매니저이자 소속사 사장, 유명 재즈 오케스트라 '클리어 톤즈'의 악단장. 예총 일본지부장. 김연자와 18세 차이며, ''김연자의 어머니와 2살 차이, 아버지와 7살 차이'다.

 

김연자 일본 비자 문제

김연자가 처음으로 일본에 데뷔했을 때 악단장으로 온 그와 만났고 첫눈에 서로 끌렸다. 김연자가 한국에 돌아온 후 장거리 연애와 일본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혼한다. 결혼 후 일본 갈 비자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한국에서 음반이 대박 나서 일본에 가지 않고 한국에서 활동하게 된다.

 

김연자 일본 내 기획사 대표

남편은 김연자의 일본에서의 성공에 공을 세웠다. 남편은 고교시절부터 색소폰 연주자로 활동해 가요계 지인들이 많았고 남편 때문에 김연자를 도와준 사람들도 많았다. 남편은 김연자의 일본 내 기획사 대표를 맡아 그녀의 모든 스케줄과 수입을 관리했다. "남편은 아버지처럼 인자하고 다정하게 저를 이끌어줬죠. 남편이 없었으면 일본의 김연자도 없었어요. 두 번째로 일본에 갔을 땐 아무런 신경 쓸 일 없이 노래만 부르면 됐어요. 그땐 남편이 제 매니저가 되어주었어요. 남편은 어떻게 하면 가수 김연자를 세계로 통하게 할 수 있을까 연구하는 사람이에요. 어떤 때 보면 남편이 저보다 더 제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같아요. 남편 이 야쿠자라는 등의 소문은 말도 안 돼요. 정말 자상한 사람이에요.” 싸울 때 남편이 김연자에게 "나 없었으면 너 호스티스나 하고 살았을 것"이라 말했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기인한다.

김연자 야쿠자 루머

김연자의 남편이 야쿠자라는 소문이 한국에 있었지만, 남편 본인은 그런 소문을 몰랐으며 야쿠자임을 부정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은 없다. 남편은 가수 일이 아이라며 음악만 하길 원했다. 그리고 아이를 가질만한 여유가 생기나 싶으면 가수로서 큰일이 와서 번번이 임신의 기회를 놓쳤다. 아이에 신경 쓸 시간도 없었고 김연자가 가수라는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다. 마흔네 살이 되자 체념하게 됐다.

 

김연자 한복

일본에서 열리는 콘서트나 TV 프로그램에 한복을 입고 나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일본 극우들의 표적이 되어 많은 협박과 핍박을 받았다. 일본 활동 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편견을 많이 받았지만, 오로지 실력 하나로 모든 것을 제압한 것이다. 물론, 한복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디너쇼에서 계속 입고 있는데 일본 극우들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한국의 기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일부러 더 화려하고 큰 자수가 박힌 한복을 입는다고 한다. 참고로, 그녀가 입는 한복은 특수하게 수제 제작되어서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다. 그래도, 요즘은 예전보다 한 류 세가 많이 커져서 굳이 본인이 한복을 입으면서 한국을 알리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김연자 명곡

김연자는 한국의 수많은 명곡들을 일본에 많이 알려준 가수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돌아와요 부산항에, 임진강, 노란 샤쓰의 사나이, 내 나이가 어때서, 이별, 강원도 아리랑, 고장 난 벽시계, 안동역에서 등등... 수많은 한국 노래를 일본어 가사로 번안하여 부르기도 했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일본어로 커버한 것도 유명하다.

김연자 블루투스 창법

특유의 블루투스 창법의 경우에는 김연자의 성량이 워낙에 크기에 만들어진 창법으로, 정엽의 맷돌 창법과는 차이가 있다.

환갑이 넘었음에도 성량이 커서 마이크를 멀리 떼고 불러도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어느 행사에서 마이크 소리가 너무 컸던지 귀를 막고 있던 관객을 본 뒤로 마이크를 멀리 뒀다가 가까이 뒀다가 자유자재로 다루며 성량을 조절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야외 현장 스피커에선 소리가 작은 걸로 의심되는 정황도 있어 후보정 덕에 소리 크기가 유지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다.

 

쩌렁쩌렁 울리는 매우 큰 성량과 때로 과격하게까지 느껴지는 강한 감정선 등, 일본의 국민 정서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가수였다. 그러나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계속 갈고닦아 긴 무명이었던 기간을 이겨내고 일본의 국민 가수가 될 수 있었다.

 

김연자 나는 트로트 가수

2012년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 출연해서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불러서 Staff가 뽑은 1위에 꼽혔다. 다른 가수들이 모두 퓨전적이고 세련된 편곡을 한 것에 반해서 김연자는 그야말로 정통 트로트의 진수를 보여줬다. 김연자 특유의 폭풍 가창력과 뒷부분의 애절한 내레이션까지 최근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나는 가수다의 무대를 관광 보낸다는 평가까지 받았으며, 1위를 기록한 문주란 이상까지 간다는 호평을 얻었다.

김연자 향수병

"향수병에 시달리던 시절이 있었죠(웃음). 한국가수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고 있어요. 한국인임을 잊지 않기 위해 지금도 공연을 할 때마다 한복 한 벌씩을 입어요. 하지만 향수병은 오래전 이야기죠. 저랑 함께 일하는 스태프만 50명이에요. 외로울 틈도 힘들 틈도 없어요. 지금처럼 엔화가 비쌀 때 일본에서 더 열심히 벌어서 한국에 투자도 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해야죠. 예쁘게 봐주세요" 일본에서 음반이 잘 되지 않거나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크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얼굴이 된 만큼 끝까지 멋지게 활동을 하고 싶다는 그녀는 기회가 된다면 꼭 한국 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연자 공생원

자선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목포에 있는 고아원인 '공생원'에 '사랑의 음악당'을 건설하기 위해서 자선 콘서트를 한일 양국에서 50회를 열었고, 2011년 대지진 당시에는 도전 1000곡의 우승 상금을 모두 기부했다.

 

김연자 천하장사 만만세

씨름판에서 유명한 "천하장사 만만세~"를 부른 가수다. 곡명은 천하장사로, 1986년에 발표했다. 또한 1988 서울 올림픽 찬가 '아침의 나라에서' 역시도 그녀의 노래인데,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본래 '아침의 나라에서'는 국민 투표를 통해서 서울 올림픽 주제가로 낙점됐는데 그 뒤에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서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로 교체됐다. 이 어른의 사정이 웃는 게, 국민 투표로 이 곡이 당선된 뒤부터 '촌스럽다', '세계인들이 들을 노래인데 너무 뽕짝스럽다'는 이유로 신문에서 비난 여론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 뒤에 의뢰되어 만들어진 곡이 당시에 한국에서 듣보잡이었던 코리아나가 부른 '손에 손 잡고'였다. 김연자의 곡도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좋은 곡이기는 하지만, 손에 손잡고 가 넘사벽 수준으로 훌륭해서 묻혔다.

 

KBS 전국노래자랑과 NHK 노래자랑에 가끔씩 초대가수로 나온다.

프로듀스 101 시즌2와 쇼미 더머니 6을 봤다고 했으며 김사무엘을 응원했다고 한다.

2005년 01 「김연자 김치」 전국 유명 식료품점에서 발매한다.

김연자 유재석의 팬

무한도전에 출연해서 유재석의 팬이라서 꼭 만나고 싶었는데 너무 반가웠다고 했으며, 해피투게더에서도 만나서 팬이라고 계속 말했다고 한다. 박명수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방배동 이웃 주민인 인연과 EDM으로 통하는 게 있었고 박명수가 엄청 챙겼다고 했다.

 

김연재 부산대 축제

2018년 부산대 축제에 참가 소식이 있었을 당시의 반응은 이구동성으로 이게 대학교 축제인지 어르신 축제인지 모르겠다, 학생회장 토토 했냐? 등의 혹평이 많았지만, 막상 축제에서 여러분으로 클래스를 제대로 보여줬고, 아모르파티를 부르니까 난리 났다. 이에 따라서 다른 문제와는 별개로 축제 뒤로부터 섭외 가수에 대한 불만은 일축되었다. 그리고 2018년 부산대 시월제 축제에 우정 출연으로 다시 방문했다.

 

김연재 김정일 방북

2001년 방북 때 김정일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았으며, 개런티에 대해서 합의 없이 왔기 때문에 그냥 자선 공연인 셈 치려 했다. 하지만 환영 만찬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김정일이 "자선 공연은 절대 하지 마거라. 그게 우리한테는 고마운 일이지만, 다른 외국 가수들도 돈 받고 오는데 왜 자선 공연을 하려 하느냐?"면서 직접 돈이 든 서류봉투를 건넸다고. 한편으로는 김정일과 만난 김에 혈액형이 뭔지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주변의 간부들이 그런 민감한 생체 정보는 기밀 사항이라면서 곤혹스러워하는 것을 김정일이 말리고는 "내 혈액형은 A형이다.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아본다."는 답변을 흔쾌히 했었다.


“한 회에 집 두 채…” '아모르파티' 김연자, 과거 어마어마한 출연료 공개했다

'라디오스타' 출연해 과거 출연료 밝힌 김연자

“과거 일본 디너쇼에서 1억 원 받은 적 있다”

 

가수 김연자가 과거 입이 떡 벌어지는 출연료를 공개했다. 지난 10일 MBC '라디오스타'에는 김연자, 러키, 홍잠언, 김소연, 안성준 등이 게스트로 출연해 입담을 뽐냈다.

 

이날 MC 김국진이 김연자에게 "90년대 일본에서 '엔카의 여왕'으로 유명했는데 디너쇼 출연료가 어마어마했다더라"라고 묻자 그는 "보통 받는 출연료도 있었는데 딱 한 번 한 회에 1억 원을 받은 적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MC들이 "90년대 1억이면 굉장한데"라고 놀라자 김연자는 "그전에는 음반 회사와 전속 계약으로 또 1억을 받았었다. 그 돈으로 바로 부모님 집을 사드렸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김연자는 "그때 당시 1억으로 집 두 채를 샀다"라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한편 김연자는 방송에서 2010년부터 11년째 연애 중인 남자친구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한 번 갔다 왔다 보니 결혼에 신중해졌다. 남자친구가 이혼 당시 도와줬다"며 "올해는 결혼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1959년생인 김연자는 올해 나이 만 62세다. 그는 1974년 '말해줘요'로 데뷔 후 '수은등', '아침의 나라' 등 많은 히트곡을 배출하며 일본에서는 '엔카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64세 김연자, 13년째 연애 중인 남자 친구와 결혼식 올릴 장소는 바로 '이곳'

남자친구와 13년째 연애 중인 김연자

“칠순 잔치 대신 결혼 콘서트 합니다”

 

가수 김연자가 결혼 계획에 대해 얘기했다. 지난 1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 리그'에는 김연자가 게스트(특별출연자)로 나와 '칠순 잔치 대신에 결혼 콘서트 합니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김연자는 남자친구와 13년째 연애 중이라며 결혼을 이미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처음에는 '빨리해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 나이를 먹어서 굳이 서로가 이해하고 같이 사는 건데 서두를 필요가 있나 싶었다"라고 얘기했다.

 

이어 "이왕 의미 있게 결혼식을 하자고 김연자 기념관이 완공되면 결혼식을 하자고 했다"라며 "지금 전남 영광에서 (기념관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빨리 안 돼서 기념관이 다 지어지면 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연자는 "(완공이) 빨라야 3~4년 뒤다"라며 "그래서 70살이 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또한 김연자는 축가 가수로 이미 2년 전부터 SG워너비의 이석훈을 정해두고 있다고 밝혔다. 김연자는 "이석훈과 방송을 같이 하다가 뵀는데 결혼 소식에 선뜻 '노래할게요'라고 하더라"라며 "지나가는 말인 줄 알고 그냥 뒀는데 매니저한테 '언제 하냐'라고 전화 오더라"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너무 미안해”… 김연자가 후배 정용화 보며 울음 터뜨린 이유

SBS '트롯 신이 떴다' 정용화, 트롯 신들 정성껏 보필

'트롯 신', 2주 연속 동시간대 1위

 

트로트 가수 김연자(62) 씨가 힘겹게 짐을 옮기는 가수 정용화(32) 씨에게 미안한 마음에 울음을 터뜨렸다. 지난 11일 방송된 SBS '트롯 신이 떴다'에서 정용화 씨가 트롯 신 5인방(김연자, 남진, 설운도, 주현미, 진성, 장윤정)을 정성껏 보필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날 합숙할 숙소에 도착한 트롯 신들은 계단이 많은 하우스에 당황했다. 정용화 씨는 자신이 짐을 다 들겠다고 걱정 말라며 선배들을 보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짐이 제일 많은 김연자 씨는 정용화 씨가 짐을 운반할 때마다 어쩔 줄 몰라했다. 그는 괜찮다며 밑에 하나 남은 짐을 갖다 드린다고 말했다.

 

김연자 씨는 “너무 미안하다. 미안해 죽겠다.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진짜 이런 집인 줄 몰랐다"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에 정용화 씨는 짐이 안 무거워서 괜찮다며 짐을 방까지 넣어주는 배려까지 돋보였다.

 

그는 땀에 흠뻑 젖으면서도 선배들 방을 돌아다니면서 물심부름과 와이파이 비밀번호까지 알려주었다. 이날 정용화 씨는 트롯 신들을 열정적으로 챙기는 모습에 선배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대표곡

못 잊을 건 정 1976년

진정인가요 1982년

그런 거야 1983년

수은등 1984년

당신은 1985년

아침의 나라에서 1986년

천하장사 1986년

朝の国から (아침 나라에서) 1988년

暗夜航路 (암야항로) 1989년

十三湖の雪うた (주산 호의 눈노래) 1990년

熱い河 (뜨거운 강) 1996년

人生海峡 (인생해협) 1999년

陽は昇る(해가 뜬다) 2000년

愛☆アリガトウ (사랑☆고마워) 2002년

北の雪虫 (북녘의 눈벌레) 2002년

南十字星 (남십자성) 2005년

始発駅 (시발역) 2006년

命火 (명화) 2008년

夜明け前 (새벽 전) 2008년

10분 내로 2009년

아모르파티 2013년

타이틀 2014년

쟁이쟁이 2015년

밤열차 2016년

블링블링 2019년

김연자

히어로콘서트의 김연자

기본 정보

출생 1959년 1월 25일(64세)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성별 여성

국적 대한민국

거주지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직업 가수

장르 트로트, 엔카

활동 시기 1976년~

학력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졸업

배우자 김호식(1982년 결혼~2012년 이혼)

종교 개신교

레이블 일본 닛폰 크라운

소속사 대한민국 홍익기획

일본 YJKcompany(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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