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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독스 2023.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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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張允瀞

Jang Yoon Jeong

 

출생

1980년 2월 16일[입학유예] (42세)

충청북도 중원 군 금가면 월상리

(現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월상리)

 

국적

대한민국

 

본관

인동 장씨 (仁同 張氏)

 

신체

키 : 168cm,

몸무게 : 48kg,

발크기 : 245mm,

혈액형 : B형

 

가족

아버지 장동수,

어머니 육흥복(1956년생)

남동생 장경영(1982년 3월 12일생)

배우자 도경완(2013년 6월 28일 결혼 ~ 현재)

장남 도연우(2014년 6월 13일생)

장녀 도하영(2018년 11월 9일생)

 

학력

성호초등학교 (1993 졸업)

오산여자중학교 (1996 졸업)

영신여자고등학교 (1999 졸업)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 99 / 전문학사)

 

종교 : 불교

 

소속사 : 초록뱀이앤엠 

 

데뷔 : 1999년 제20회 강변가요제

대상 : (데뷔일로부터 +8564일, 23주년)

2004년 정규 1집 어머나 (데뷔일로부터 +6674일, 18주년)

MBTI ESFJ 팬덤 레모네이드

 

앨범

2004년 1집 어머나

2005년 2집 짠짜라

2006년 3집 이따, 이따요

2008년 4집 장윤정 트위스트

2010년 5집 올래

2012년 6집 왔구나 왔어

2015년 7집 女子

2019년 8집 Préparation(쁘레빠라씨용)

2020년 특별곡: 돼지토끼(도하영 헌정곡)

2022년 estrena(에스트레나)

 

1980년 2월 16일 충청북도 중원 군 금가면 월상리(現 충주시 금가면 월상리)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집안이 가난해 가족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살았다. 어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장윤정은 자신의 친정 아빠와 같이 살고 있었다.

상견례 때도 장윤정의 소속사 대표와 장윤정의 친정아버지인 장동수 씨만 참석할 정도로 장윤정 본인도 자기 친정 엄마와 친정 동생이랑 연 끊고 살고 있다고 한다. 장윤정의 친정 식구들 중 아버지만 정상적인 분이라서 그런지 가정적 불화로 이혼하고, 연 끊고 살아온 탓에 지금까지 장윤정은 아버지 하고만 같이 살아온 것이다.

 

대학교 시절에는 자취를 했는데, 난방비가 없어서 겨울에 자다가 추위에 잠이 깰 때마다 헤어 드라이어로 이불속을 데우고, 강아지를 껴안고 다시 잠이 들 만큼 아주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토크쇼에서 밝히길, 그 당시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학자금을 대출받으러 은행에 갔다가 부모가 진 부채 때문에 자신도 신용불량자인 사실을 알았고, 당시 은행 직원이 모니터를 돌려서 신용 상황을 보여주면서 이 상태에서는 휴대전화도 개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지점 안에서 자기를 보는 사람들도 많아서 엄청나게 창피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장윤정의 사정을 들은 대학교 친구들이 돈을 모아서 등록금을 마련해 주었으며, 평생 은혜를 갚아야 할 친구들이라고 한다. 1999년 강변가요제에서 '내 안의 넌'으로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가수로 데뷔하는 과정은 어려웠다. 첫 공식 방송 무대에서 너무 떨었다. 제주도에서 열린 행사에서 댄스곡을 불렀는데 의외로 잘 부르고, 안무 실력도 수준급이다.

사실 댄스 가수로 활동할 기회도 있지만, 본인은 트로트가 제일 편하다고 실토했다. 사실 비음 때문에, 다른 장르와는 잘 안 맞는다고 말한 음반 제작가도 있다. 기획사에 들어가서도 음반을 낼 돈이 없어서 단역 배우로 활동했다. 실제로 '어머나'로 뜨기 전까지인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나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 등에서 재연배우 일로 전전하였다. 이 시절 모습은 이후에도 종종 케이블에서 나온다. 본인도 이것 때문에 돈을 밝혔고, 그래서 쉽게 갈 수 없는 트로트를 선택했다고 한다. 결국은 크게 성공했다. 다만 너무 상업성만 노렸다고 질타해서 이후, 노래는 같은 트로트지만 스타일을 바꾸었다.

2004년 '어머나'로 데뷔했는데 말 그대로, 전국을 강타했다.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트로트가 1위를 한 것은 김수희의 '애모'가 93년 상을 받은 이후 11년 만의 일이었다. 작은 소속사에서 데뷔한 만큼 별다른 홍보도 없었으나, 노래가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고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신청받는 곡이 되며 알아서 홍보가 되었다.

트로트는 중장년층만 부른다는 편견을 깨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최초 사례. 서태지가 음악시장을 재편한 이후로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 이무송의 ‘사는 게 뭔지’, 김수희의 '애모', '남행열차', 김혜연의 '참아주세요' 등 전 세대를 아우르는 트로트 히트곡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 20대 초반 여가수가 본격 트로트로 데뷔하고 크게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 블루 오션 개척 사례로 경영학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웬만한 아이돌 가수보다도 크게 성공했다.

 

이후 '어머나'로 쌓은 인지도로 2집 '짠짜라'와 3집 '이따이따요', 4집 '장윤정 트위스트'를 냈는데, 어머나 못지않게 히트를 치며 적자를 낸 음반이 없다. 음반을 판매한 수량은 둘째고, 보통은 특정 세대만 기억하는 다른 가수들과는 달리 거의 모든 세대가 자기 노래를 기억하는 건 엄청 드문 일이다. 간드러진 음색 자체가 트로트랑 적합하고, 넉살 좋은 이미지는 중장년~노년, 심지어는 10대까지 아울렀다.

2007년부터 게스트로서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일단 우리 결혼했어요 파일럿으로 출연했으며, 그 후 각종 방송에 조금씩 출연 횟수를 늘리면서 '골드미스가 간다'에서 고정 출연한다. 이휘재와 함께 도전 1000곡 MC를 맡았다. 진행력은 역대 여자 MC들 중에서 가장 우수하지만,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것보다는 무대에서 진행하는 것처럼 보여, 약간 호불호가 갈렸지만 프로그램 성격과 잘 어울리고, 그런 진행 스타일을 선호하는 해외 동포를 비롯한, 장년층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좋아하는 쪽이 더 많았다. 이따금씩 왕중왕전에서 있는 패자부활전에서 노신(노래의 신)으로 나와 게스트들과 대결했는데, 짬밥 자체가 허풍이 아닌 걸 여실히 증명했다.

2011년 9월 12일 나는 가수다의 스핀오프격 추석 특집 프로그램인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서 부활의 'Never Ending Story'를 불렀는데 원곡을 재현하려고 한 것은 좋았지만, 호불호가 갈렸으며 일부 시청자들의 혹평을 받았다. 원곡은 락발라드인데 트로트식 바이브레이션이 나와 본인도 연습 과정에서 계속 이걸 자제하려고 했지만 트로트 창법이 몸에 베였다고 볼 수 있다.

 

2013년 일본에서 발표한 2집 타이틀 곡인 '最期の川' 로 일본 유선방송 엔카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해당 곡은 한국에서 발매했던 '초혼'의 번안곡으로, 기존 장윤정표 트로트와는 조금 다른 애절한 곡이다. 2006년 '만화로 풀어가는 스타고백'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데뷔하기까지 파란만장했던 인생이 만화로 보이기도 했는데, 상위 논란들을 생각한다면 더욱 안타까워지는 이야기가 된다.

 

2014년 8월, 소속사 인우기획이 갑작스럽게 폐업하게 되면서 무적(無籍) 상태가 되었다. 장윤정의 계약기간은 이미 만료된 지 오래였지만, 데뷔 때부터 함께 해 왔으니 당연히 함께 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본인은 충격이 매우 컸던 듯. 이후 많은 소속사들이 러브콜을 보냈으나, 도전 1000곡과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함께 출연한 이휘재가 소속된 코엔스타즈와 계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코엔스타즈와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2015년 발표한 7집 앨범의 타이틀곡 '반창고'가 다시 대박을 내면서 성공적인 복귀를 마쳤다. 타이틀곡 선정 능력으로는 따라갈 사람이 없다. 2017년 3월에 7집 앨범의 수록곡인 '벚꽃길'을 재편곡하여 벚꽃길 2017을 발표했다. 또한 7년 만에 음악 방송도 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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